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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2-0908]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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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웃음의 힘, 웃음의 철학

: 남 낮추는 웃음과 자신 낮추는 웃음의 차이

남 낮추는 웃음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잣대로 한 공격 무기
불상 불쏘시개 쓴 단하천연, 이탈의 의외성으로 웃음 유발
유머감각은 웃기는 능력보다는 언제라도 웃을 수 있는 능력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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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츠시카 호쿠사이 ‘단하소불도’.

 

비극은 비장함의 감정을 따라 하나의 초월적 가치로 수렴되기에 작지 않은 통일성을 갖는다. 반면 웃음은 이유나 양상이 너무들 달라서 하나로 수렴되는 지점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웃음은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남들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는 방식으로 발생하는 웃음이고,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 망가짐으로써 발생하는 웃음이다. 전자는 앞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등 서구의 고전적 사상가들이 다룬 유형의 웃음이다. 자신의 우월함을 전제로 하든, 혹은 자신을 우월한 자리로 상승시키기 위해서든, 높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낮은 것은 나쁜 것이라는 수직적 위계를 전제로, 높은 곳을 차지함으로써 얻는 웃음이다.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아상(我相)의 충실한 작동이라 할 것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발생하는 웃음은, 남을 바보로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바보로 만들며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다. 앞서 말한 웃음이 상승하는 방향을 따라가며 발생한다면, 이는 하강하는 방향으로 따라가며 발생한다. 그렇다고 자기를 높이는 것과 대칭적인 것만은 아니다. 남들의 잣대를 따라 하강하거나 남들의 요구나 명령을 과도하게 순종하며 망가지지만, 이로써 잣대나 요구, 명령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의문 속에 침수하게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강의 선을 따라가지만 동시에 잘난 자리, 높은 지위를 점한 이들을 같이 끌고 내려가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가령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채플린)가 그렇다. 고장난 자동급식기에 두들겨 맞으며 찰리는 웃음거리가 되지만, 그럼으로써 식사시간마저 없애 노동을 하게 하려는 똑똑한 발명가나 계산 빠른 자본가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나를 높이는 것이 자아의 방어기제와 결부되어 있다면, 나를 낮추는 것은 방어기제를 열고 오는 공격을 오는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자아를 약화시키고 해체하려는 방향을 향한 것이라 하겠다. 남들을 낮추는 웃음은 자신이 믿는 지고한 가치를 잣대로 하며, 그걸 공격의 무기로 삼는다. 따라서 그 잣대를 의심하거나 망가뜨리는 웃음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초월성의 가치와 상응하는 웃음만이 있을 뿐이다.

반면 자신을 낮추는 웃음의 방법은 자아든 자신이 좋다고 믿는 것이 망가지는 것을 받아들이며 하강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상대의 공격 앞에 내놓고 내려놓으며 함께 웃는다. 그렇게 망가지는 가운데 망가진 가치나 인물의 진면목이 살아나는 역설이 발생한다. 추운 겨울날 목불(木佛)을 뽀개 불을 때곤, 황급히 달려와 이게 무슨 짓이냐고 비난하는 주지에게, 사리를 얻기 위해 불상을 태웠다며 ‘바보 같은’ 말로 능청을 떠는 단하(丹霞) 스님이 딱 이런 경우다. 불상을 태워 어떻게 사리를 얻느냐고 하자, “그럼 저기 남은 두 불상도 마저 가져다 불을 때자”고 할 때, 어리석음과 똑똑함의 역전이 발생한다. 이로써 부처의 진면목에 대한 물음이 불타는 불상 속에서 역설적으로 솟아오른다.

수직의 방향으로 상승하거나 하강하며 만들어지는 웃음과 달리, 옆에 있는 ‘이웃’과 만난다는 점에서 수평의 방향에서 만들어지는 웃음이 있다. ‘수평’이라 하지만 옆에서 그 옆으로 수평적인 선을 따라 만나는 게 아니라, 통상은 고저의 위계가 있다고 믿어지는 것조차 이리저리 넘나들며 옆에 있는 이웃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란 점에서 ‘횡단적’이라 해야 할 웃음이다. 토굴에 앉아 열심히 좌선하는 마조 옆에서 기왓장을 가져다 숫돌에 갈며 생각지도 못했던 둘을 연결하여 마조의 생각을 뒤흔들었던 남악의 일화는 다시 들어도 웃게 된다.

거대한 이념이나 대의, 혹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도덕이나 가치와 대놓고 싸우는 거창한 저항은 결단을 요구하는 쉽지 않은 비장함을 갖는다. 그저 말 하나, 물건 하나의 자리를 바꾸는 작은 이탈이나 소소한 위반은 눈이나 귀를 당기는 것이면 충분하다. 의외성이 시선을 잡아채고, 정확한 이유를 모르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게 할 때, 우리는 웃는다. ‘웃는다’고 했지만, 실제로 웃음이 동반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신발을 뒤집어쓴 스님은 익살스럽지만, 이유를 정확히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없는 걸 내려놓으라 했다가 무얼 내려놓냐고 하니 다시 지고 가라 하는 재치 있는 대답은 말이 안되는 말이지만 누가 보아도 수긍하며 미소지을 법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불전에 앉아 절을 받아야 할 불상을 끌어내려 불쏘시개로 쓴 단하도 이런 경우라 할 터이다. 즉 고저의 위계가 깨지면서 위아래 있던 것이 있어야 할 곳에서 벗어나고 이탈한다는 점에서 하강과 횡단은 하나로 합류한다. 반면 남을 낮추거나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조롱하는 웃음은, 있어야 할 자리를 상기시키고 이탈한 자를 조롱하며, 주어진 지위의 위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확보하고 확인하려 하기에, 이런 횡단과 손잡지 못한다.

웃음이 실제로 발생하든 말든, 이런 이탈의 의외성은 웃음과 상관적인 어떤 유쾌함의 감응을 유발한다. 크든 작든 ‘아!’ 하게 하는, 어떤 경탄으로 표현될 어떤 수긍의 정서를 동반한다. 웃음이나 유쾌함이란 말로 표시될 이런 종류의 감응이나 정서를 우리는 ‘유머’라고 명명할 수 있다. 신발을 뒤집어쓴 조주의 의외성에 ‘앗!’ 하게 될 때, 이해하지 못해 의아해하는 신체를 이 알 수 없는 유쾌한 감응이 스쳐간다.

이런 점에서 웃음과 유머는 충실한 신학자들의 근심대로, 확실히 지고한 어떤 것을 의심의 대상으로 만들고, 주어진 어떤 것에서 떠나게 만드는 이탈의 힘을 촉발한다. 의외성을 야기하는 작은 이탈을 통해, 조건과 무관한 초월자에 사로잡히고 지고하다는 것에 매인 마음을 풀어놓고 벗어나게 한다. 이탈의 작은 거리를 두고 그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 모두가 어떤 ‘조건의 산물(緣生)’이며, 그 조건에서 벗어나면 다른 상황, 다른 대상과 만날 수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존재자나 대상, 가치나 상황에 사로잡혀 있는 이는 웃을 수 없다. 이 경우 진지함은 그러한 것들에 매여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무게가 되고 만다. 반대로, 그러한 것들에 대해 웃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다른 상황, 다른 가치, 다른 세계로 가는 출구가 보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유머와 웃음이 만들어내는 것은 주어진 것들과 거리를 두고 보게 하는 여백의 공간이고, 다른 조건, 다른 길이 있음을 보게 하는 여유의 대기/분위기(atmosphere)다. 다른 삶을 향해 몸을 돌리게 하는 가벼움의 힘이 거기에 있다. 따라서 유머의 힘은 웃음이라는 반응을 유발하는 농담이나 개그의 장난스런 언행보다는, 차라리 웃으며 주어진 것들에서 벗어나는 능력, 확고해 보이는 것 속에 다른 어떤 것을 불러들이는 감각적 거리와 인접해 있다. 유머감각은 사람을 웃기는 능력보다는 어떤 상황이든 웃을 수 있는 능력과 가까이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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