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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2-0816]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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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망가지며 우는 불제자, 불상 태우는 선승

: 종조에게까지 익살 구사하는 놀라운 유머감각

마애불·미륵불 등 부처님들이 ‘망가진’ 형상으로 자주 등장
진지함과 가벼움 만날 때 짓눌리지 않고 편히 다가서게 돼
지옥 그림도 익살스런 엽기성으로 악행 멀리하게 하는 의도

 

2022-1007_불교를 미학하다15.jpg
막고굴 158굴의 ‘십대제자거애도’.

 ‘감로도’ 중 지옥도 부분.
‘감로도’ 중 지옥도 부분.

칼이나 창을 든 채 악행을 한 사람이나 마귀를 밟고 서 있는 사천왕상은 눈을 부릅뜨고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흔히들 ‘분노상’이라 하고, 두려움을 준다고들 하는데,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내가 사천왕상을 볼 때마다 받는 인상은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 점이 무엇보다 놀랍다. 더없이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따뜻하고, 위협적 동작을 하고 있는데 유머러스한 느낌을 줄 수 있다니! 개인적인 얘기를 덧붙이자면, 나는 절에 있는 상들 가운데 사천왕상을 가장 좋아한다. 사천왕상만큼 많지는 않으나 금강역사상도 그렇다.

거대한 열반상이 있는 돈황석굴 제158굴의 벽에는 스승의 열반에 오열하는 제자나 조문한 왕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울고 있는 표정이 극도로 과장되어 있어서 더없이 해학적이다. 종조(宗祖)의 죽음에 대한 제자들의 슬픔마저 이렇게 익살스레 표현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유머감각이다. 또 자기 종파의 종조나 도인, 심지어 불교 전체의 종조마저 그런 익살을 섞어 표현하기도 한다. 유명한 김명국의 ‘달마도’가 그렇지만, 달마대사는 조각상이든 그림이든 어디서나 해학적인 모습이다. 운주사 석불들은 물론 한국의 많은 마애불들에서 미륵불, 아미타불 등 부처님들이 ‘망가진’ 형상으로 등장하는 걸 보는 건 흔한 일이다. 중국 병령사 석굴에 있는 석가모니 고행상은 뼈가 다 드러난 채 앉아 있지만 웃고 있는 모습이 익살스런 느낌마저 준다.

종조에 대해서까지 주저 없이 익살을 구사하는 이런 유머감각은 정말 어렵고도 희유한 것이다. 종교는 물론 철학이나 정치 등 세속적 이념도 모두 그 창시자나 지도자의 위대함을 예찬하기 마련이다. 사실 불교 또한 그렇지 않다고는 하기 어렵다. 경외 어린 존숭과 예찬으로 그 많은 불상들이 조성되었음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 틈새 여기저기서 희유한 유머감각이 발동한다.

예찬하는 대상을 익살이나 해학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위대함에 대한 경의는 진지함을 요구하고, 진지함은 대개 경외감을 동반하는 엄숙함으로 표현된다. 위대함은 거대함이고, 그 거대함은 우리를 압도하는 무게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반면 웃음이란 무거움이 아니라 가벼움과 상응한다. 가볍지 않으면 웃기 힘들다. 역으로 웃음은 무언가를 가볍게 한다. 그래서 종종 가벼움은 진지함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우리는 진지한 가벼움이 있음을 알고 있다. ‘모던 타임즈’ 같은 채플린의 코미디는 가볍지만 진지하다. 탁월한 코미디는 그저 웃기기만 하는 코미디가 아니라, 이처럼 진지함을 가벼운 웃음으로 표현할 줄 아는 코미디다.

코미디는 아니지만, 불상에 올라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춥다고 불상을 뽀개 태우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처럼 대답했던 단하(丹霞) 스님의 언행은 정말 놀랄 만큼 가볍고 익살스럽다. 그렇지만 그것이 동시에 불법의 요체를 겨냥한 진지함을 바탕으로 함을 우리는 안다. 진지함과 무거움을 동일시하는 통념적 등식과 달리 진지함과 가벼움이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위대함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웃으며 거기에 다가갈 수 있다. 사실 좋은 삶에 대한 희망이 만들어낸 것의 무게에 짓눌려 삶을 바치게 된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그렇기에 가장 중요하고 위대하다고 믿는 대상조차 가볍게 유머의 감각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아주 중요한 미덕이다.

20세기 이전 서양 화가들의 그림 가운데 익살스런 그림이 없다고 할 순 없다. 라 투르의 ‘야바위꾼’처럼 눈동자와 표정만으로 멋진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그림도 있고, 축제의 거리나 부엌의 빈민들을 익살스레 그린 브뤼헐도 있고, 고딕성당의 가고일처럼 동물과 인간, 악마와 인간을 섞어서 해학적 형상을 만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유머가 겨냥한 대상은 대개 사기꾼이나 빈민,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어린’ 평민들, 혹은 동물이나 악마 같은 ‘저급한’ 이들이었다. 신이나 예수, 성인이나 천사들을 이런 익살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보쉬가 그린 ‘쾌락의 정원’이나 브뤼헐이 그린 ‘죽음의 승리’ 같은 그림들은 탁월한 유머감각을 발휘한 경우지만, 이는 모두 지옥이나 죽음 같은 부정의 힘이 작동하는 저급한 세계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나마 이들의 엽기적 유머 또한 극히 예외적인 것이었다. 지옥의 그림은 대개 공포를 유발한다.

지옥에서의 엽기적 처벌을 그린 익살스런 그림은 불교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그런데 그 그림들에서 처형은 엽기적이지만 대부분 익살스럽게 과장되어 표현된다. 익살스럽든 아니든 잔혹한 지옥의 그림이 겨냥하는 바는 그런 악업을 짓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니 마찬가지 아니냐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공포를 유발하는 그림과 웃음을 유발하는 그림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서양에서 초월적 신이 금지된 계율을 어긴 죄인을 지옥에 보내 징치하는 심판자라면, 부처나 보살은 어떤 경우에도 심판자가 아니다. 지옥이 있으니 명계를 다스리는 ‘염라대왕’ 같은 심판자가 등장하게 되지만,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이 그렇듯, 부처나 보살이 지옥도에 등장하는 것은 자신의 악업으로 지옥에 간 이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사천왕이나 금강역사는 ‘불법을 수호한다’고 하지만, 그때 불법이란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법이니, 그것이 겨냥한 바는 죄를 묻고 금지하는 위협이 아니라, 중생의 삶을 보호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중생들을 위협하여 두려움 속에서 죄를 피하는 게 아니라 벌 받는 장면의 익살스런 엽기성을 통해 악행으로부터 웃으며 거리를 두게 하려 함이었을까?

세속의 이념이나 권력 또한 지고한 것에 대한 웃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역으로 권력에 대한 비판은 풍자의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 또한 자기 아닌 남을 겨냥한 웃음이고 비판이다. 정말 어렵고 드문 것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의 종조나 주인공들을 웃음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불상을 태우고 부처를 똥막대기로 만드는 거침없는 언행은 더 큰 스케일을 상상하기 힘든 스케일의 유머라 하겠다. 누구는 이를 ‘우주적 스케일의 유머’라고까지 한 바 있다. 무엇이 이런 스케일의 유머를 가능하게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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