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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2-0711]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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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기겁할 기둥들, 기막힌 탑과 불상: ‘대충’의 파격과 불완전성

: 빈틈 갖기에 불완전하지만 완성된 ‘미완의 미학’

중국 현공사 기둥은 대충의 미학이 더 파격일 수 있음 보여줘
대흥사 대웅보전 기둥은 능청스레 슬쩍 벗어나는 파격의 미학
닫힌 완전성 아닌 언제든 다른 것 부과될 수 있는 열린 완전성

2022-0923_불교를 미학하다13.jpg
중국 산서성 현공사.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배흘림기둥을 빌미로 ‘대충의 미학’에 대해 말했지만, 이는 단지 배흘림기둥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운강석굴 9·10굴, 12굴 혹은 그 인근의 기둥들은 곡률이 일정하거나 일정하게 변하는 그런 곡선이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기하학적 규칙성도 없어서 필경 ‘그로테스크’하다고 할 법한 기이한 형상, 기둥이라기보다는 절단되고 남은 기암의 여백 같다. 만약 이 기둥 하나만놓고 본다면, 이름답다는 판단을 하기는 솔직히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거대한 사암에 일부러 그런 것처럼 불규칙하게 배열된 각이한 크기의 석굴들과 그 사이에 있는 울퉁불퉁 제멋대로인 표면들, 그것들 모두의 위에 있는, 지붕이라기보다는 마치 이마와도 같은 상부의 거대한 바위의 넓은 표면을 보면, 거기다 기하학적 형태의 기둥을 세우는 게 얼마나 어울릴지 알기 어렵다. 직선 아닌 배흘림기둥을 세워도 그것은 석굴들 전체를 감싸며 흘러넘치는 저 불규칙한 형상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도드라져 따로 놀 것이다. 파들어간 굴들의 입구와 리듬적 연속성을 갖는, 벽인지 기둥인지 모호한 그 형상이 오히려 여기서는 아주 적절해 보인다. 다듬은 형상을 새겨 넣으려면 차라리 5,6굴처럼 전면에 전각을 세우는 편이 더 낫다. 여기서도 기암의 불규칙한 바위들은 그 옆의 기둥들과 연속적인 리듬을 형성하며, 파고드는 전각들을 감싸고 있다.

산서성(山西省) 항산(恒山)의 현공사(懸空寺) 기둥들은 이와는 아주 다른 의미에서 ‘대충’ 세운 기둥들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거대한 바위에 달라붙은 건물들을 떠받치는 이 기둥들은 자신들이 떠받치고 있음을 가능하면 지우려는 듯, 기둥의 기능을 감추어 건물들이 허공에 떠 있거나 벽에 달라붙어 있음을 강조하려는 듯 빈약하다. 기둥의 폭은 이걸로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얇고, 그나마 시각적 안정감을 줄 직선성을 강하게 부여하지 않고 대충 다듬었다. 기겁할 기둥, 기겁할 건축물이다. 이는 한편으론 깎아지른 절벽이라는 환경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 절벽에 달라붙어 허공에 뜬 듯 보이는 절을 보면 표현형식에서도 탁월한 적절성을 갖는다. 공중에 매달려 있음을 뜻하는 절의 이름은 이런 표현이 제작진의 목표였음을 명시해준다. 기둥 하나로 푸젠성의 감로암사(甘露巖寺)는 이런 표현적 상상력이,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 경우다. 이 절에서는 단 하나의 기둥이 2층의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기단을 아슬아슬하게 떠받치는 이 고독한 기둥은 안정된 기단으로 기반으로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이란 관념을 깨는 놀라운 파격을 실행한다. 양자 모두 대충의 미학이 무난한 융통성이 아니라 차라리 놀라운 파격과 오히려 가까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절에서도 대충의 미감이 만들어낸 기둥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비현실적일 만큼 기괴하거나 묘기(妙妓)스러운 중국의 절과는 아주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은 전각 외부나 내부 모두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다. 그런데 각황전 내부의 독립 기둥, 특히 왼쪽의 기둥은 확연하게 비틀리며 구부러져 있다. 그 기둥이 받치고 있는 상부의 보들 또한 구부러져 있다. 대충 다듬어 세운 기둥과 보들인데, 배흘림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서 ‘대충’은 직선적 형태와 명시적인 대비를 이루는 구부러짐을 일부러 강조하는 느낌마저 준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의 내부 기둥들은 하나가 아니라 모두 확연하게 구부러진 불규칙한 선들로 삐뚤빼뚤하다. 한 기둥의 굵기마저 위에서 아래로 크게 변하고 있다. 오른쪽 끝의 기둥은 아래쪽에서 오목한 곡선을 그리며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하부의 든든함으로 상부를 정초하려는 발상을 깨고 있다. 화엄사나 대흥사의 기둥은 직선주의적 기둥에서 벗어나는 길은 배흘림의 규칙적이고 우아한 곡선만이 아니라 이처럼 ‘제멋대로인’ 구불구불한 곡선도 있음을 보여준다.

구불대는 윤곽선의 기둥을 주불전 불상 앞에 독립시켜 세운 것은 명백히 ‘의도적인’ 것이고 합목적적인 것이다. 경직된 직선의 공간에 그런 기둥들을 끼워 넣음으로써 부드러움과 유연함, 그리고 웃음의 여유를 만들려는 것이었을 게다. 직선의 팽팽한 긴장을 통해 만들어지는 품격도 좋지만, ‘대충’ 다듬고 대충 맞추어 세우니 재미있지 않느냐는 익살스런 질문이 그 멋지게 구부러진 선에서 흘러나온다. 불상을 둘러싼 공간에 걸맞고 중요한 전각의 위상에 부합하는 격조있는 표현을 위해 전통적 형식의 직선적 미감을 이용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비틀며 구불대는 뜻밖의 기둥을 끼워 넣는 이 과감함에는 불상에 달라붙기 마련인 권위를 편안한 여유의 감각으로 덜어내며 편안하게 해주려는 익살의 감각이 스며들어 있다. 놀라게 하기보다는 능청스레 슬그머니 벗어나는 파격의 미학을 여기서 본다.

대충의 미학은 기둥에 매여 있지 않다. 직선의 엄격함을 벗어난 선과 형태는 기둥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직선을 구부리는 대충의 미학이 틀을 깨는 파격의 미학으로 확장되는 길을 탁월하게 개척한 것은 단연 운주사의 석탑과 석불들이다. 사실 한국의 마애불들은 모두 기하학주의나 직선주의와는 정반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면 위에 구불구불한 금을 따라 조형된다는 점에서 대충의 미학의 멋진 사례들이다. 그중에서도 운주사의 석불이나 석탑들은 정말 놀라울 만큼 비정형적이고 대충 다듬어진, 완결되지 않은 형태를 갖고 있다. 탑들은 대충 맞추어 만든 기둥 위에 대충 골라낸 돌을 깔끔하게 다듬지 않은 채 옥개석을 올려 만들었다. 둥글게 다듬은 돌도 구와 거리가 먼 모습이고, 크기와 형태도 제각각이어서 위로 모여드는 원뿔형 가이드라인을 드나들며 울퉁불퉁 리드믹하다.

옥개석 두 개를 대충 다듬어 올린 탑은, 그 위에 무언가가 있던 게 없어진 것이라는 분들과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라는 분들의 논란이 있다는데, 이 논란이야말로 무언가 더 들어설 수 있는 미완의 여백을 그대로 둔 채 그 자체로 충분히 완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 이상 가감할 게 없는 닫힌 완전성이 아니라, 다른 것이 부가될 수도 있는 열린 완전성을 여기서 본다. 석불들은 대충 다듬은 돌에 정말 간단한 선만 음각하여 새긴 것도 있고, 몸도, 손도 대충 만들었고, 눈도 새기지 않은 불상, 다리 없이 몸통만 대충 늘린 불상도 있다. 제 발로 있지 못해 암벽에 기대놓은 불상들도 많다. 정말 ‘대충’ 만든 불상들이다. 그러나 이 얼마나 아름다운 불상들인가!

다들 완전하지 않아서 미완으로 보이지만, 빈틈없이 다듬어진 어떤 완전한 불상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 여백과 빈틈을 갖기에 불완전하지만 충분히 완성된 ‘미완의 미학’을 여기서 본다(이는 ‘결정불가능한 명제’가 생겨날 여백과 빈틈을 뜻하는 수학적 불완전성과 인접해 있다). 이때 미완이란 말 그대로 ‘불완전성’이지만, 그것은 완성도가 떨어짐이 아니라 무언가 더하거나 빼도 좋은 느긋한 완전성이다. ‘완전성’에 미달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남아도는’ 완전성이고 ‘완전성’ 이상의 완전성이다. ‘완전성’이란 말로 명명된 고집스런 틀을 깨는 파격의 미완이다. ‘완전성’이 닫아 놓은 문을 여는 완전성이고, ‘완전성’ 안으로 생성의 여백을 끌어들이는 완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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