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자본 시즌1] 에세이
옥수수 연대기
김 용 아
쌍용C&E의 전신인 쌍용양회는 1962년 9월 한반도면 쌍용로 89번지에서 석회석 채굴을 시작하였고 채굴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 원상복구 대신 60년간 넓혀온 폐갱 속에 600만 톤의 산업폐기물로 채우려 하고 있다. 179만평 축구장 25개 면적이며 전국 3번째 크기의 면적이다. 쌍용양회는 환경영향평가서에서 침출수가 새더라도 매립장으로부터 200m 거리인 쌍용천에 도착하는 데는 15년이 걸린다고 하였지만 3일밖에 걸리지 않았고 매립장 예정지에서 2.5km 떨어진 서강과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한반도 습지에 닿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반대하는 남한강 수계에 기대 사는 영월, 제천, 단양, 충주 지역 주민들이 연대하여 2020년 쌍용양회 산업폐기물 매립장 반대투쟁을 시작하였고 2022년 7월 31일 현재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싸움이다.
하얀 알갱이
입 안에서 터지는 서강 옥수수 알갱이
석회보다 더 하얗고
부드러운 알갱이
톡 톡 토-ㄱ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더 많은 석회를
옥수수 밭으로 실어 나른다
우리의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초록의 기억은
공장에서 나가는 기차소리와 함께
점점 더 멀어진다
말하라 말하게 하라
무슨 말이든 하게 하라
말은 힘이 세다는 것을
연대는 그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농부는 오늘도
1인 시위를 하고 왔노라고
고급 관용차를 타고 지나가던 군수는
눈길 한 번 준 적 없이 지나가고
또 지나갔었노라고
우리에게 이른다
그는 어제도 그렇게 일렀다
그제도 그렇게 일렀다
같은 수계에 살고 있는
물새 떼들만
시위 내내 연대하고 갔었노라고
일러주고 또 일러준다
우리는 또 다른 그다
일러주겠다
일러주겠다
당신이 우리에게 일러준 그 말들
한 자도 빠짐없이 일러주겠다
돌아흐르는 저 서강에게
강의 물살을 닮은
둥근 돌에게도 일러주겠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들의 부모는 회색 어둠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종족의 몰락이 마음을 뒤흔든다*
어두운 가장자리 환히 밝히던
주홍 원추리꽃 노란 달맞이꽃도
밭에 엎드린 누런 담뱃잎처럼
우리도 시들어갈 것이다
서강의 바람과 물
하늘도 믿었던 우리들의 시간
잎이 타들어간다
뿌리가 썩어 들어간다
바람이여 햇볕이여 한반도 습지여
말하라 말하게 하라
무슨 말이든 하게 하라
말은 힘이 세다는 것을
연대는 그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을
하얀 알갱이
입 안에서 터지는 옥수수 알갱이
하얀 석회보다 더 하얗고
부드러운 알갱이
톡 톡 토-ㄱ
*게오르그 트라클의 시, ‘헬리안 (「몽상과 착란」)’에서 빌려옴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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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숙
용아샘~ 시로 읽으니 내용이 더 잘 와닿아요. 두번째읽으니 더 더 곱씹혀지네요~^^
건강하시고 직접 뵐수있는 날도 기다려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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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
초록의 기억은
공장에서 나가는 기차소리와 함께
점점 더 멀어진다
말하라 말하게 하라
무슨 말이든 하게 하라
말은 힘이 세다는 것을
연대는 그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을
...
물새 떼들만
시위 내내 연대하고 갔었노라고"
가슴이 찡 ~
오늘 갑자기 쌍용에서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가 떠올랐어요.지나가다 본 기억이 많은 곳이라 맘이 찡@하네요..
시 감사합니다..
이것이 시가 갖는 힘이군요.
같은 내용을 산문으로 읽을 때와는 다른 울림이 화면에 가득하네요.
용아님의 다른 시들을 생각해도, 이 시는 다른 어펙트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첫연이 서사를 끌고가는 힘도 좋고, 표현형식도 유니크해서 좋습니다.
농부는 오늘도 / 1인 시위를 하고 왔노라고
고급 관용차를 타고 지나가던 군수는 / 눈길 한 번 준 적 없이 지나가고
또 지나갔었노라고 / 우리에게 이른다
그는 어제도 그렇게 일렀다 / 그제도 그렇게 일렀다
같은 수계에 살고 있는 / 물새 떼들만 / 시위 내내 연대하고 갔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