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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2-0307]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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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반개한 눈, 적정 속의 붓다: 친원감의 미학(상)

: 반개한 눈, 창안은 얼굴예술사 획기적인 분기점

입보다 더 강력한 명령이 눈…그 시선은 침묵이 아니라 외침
눈이 반개해 시선 아래 향할 때 기호·의미 명령문도 가라앉아
불상 안에 들어오는 모두를 고요함으로 이끄는 자장 펼쳐져

2022-0729_불교를 미학하다5.jpg
쿠샨왕조 시대의 보살상, 1세기말~2세기초(왼쪽). 굽타왕조시대 석가모니상, 5세기전반(오른쪽)

조각가는 포즈화된 신체를 만들고 화가는 신체의 형상을 그린다. 신체는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며 어떤 표정을 갖는다. 보는 이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표정을 가장 확실하게 표시하는 것은 얼굴이다. 신체의 포즈는 얼굴로 귀착되고, 얼굴에 의해 명확한 표정을 갖게 된다. 얼굴은 다시 눈과 입에 의해 표정을 갖게 된다. 얼굴은 볼과 이마가 두드러지는 앞 얼굴과 반만 드러나기에 무언가 짝을 가져야 할 것 같은 옆얼굴 사이의 어떤 각도를 취한다. 앞 얼굴은 조형된 인물의 감정이나 생각, 느낌 등을 주로 드러냄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무언가 말을 건넨다는 점에서 의미화된 기호를 방사(放射)한다. 옆얼굴은 그림 밖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상대방 대신, 그림 안에서 마주 보는 짝을 찾는다. 서로 마주 보는 얼굴은 서로에 대해 동조하고 공명하는 얼굴이다. 반면 외면하는 두 얼굴은 동조를 거부하거나 반발 내지 배신하는 얼굴이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어긋난 시선은 어긋난 대로 동조와 외면 사이에서 인물 간의 이런저런 관계양상을 표현한다.

얼굴이 표정화될 때, 이마나 볼, 그리고 입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것은 시선이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감정, 감응이 흘러나오는 곳이 바로 눈이다. 그 눈에서 방사되는 시선은 그것이 닿는 누군가에게 그 마음을 실어 나른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에서 인물들은 그 시선들의 움직임을 따라 장면화된 사건으로 말려들어간다. 입 또한 의미를 담은 기호를 내지만 그림이나 조각의 형상에서 그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하여 눈에 기댄다. 아니, 시선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이마와 볼은 촉감을 가시화하는 피부와 패인 주름으로 말하는데, 표면에 드러나게 그려진 모습으로 재현되지 않은 어떤 것이 그 주름 속으로 스며들며 접혀들어간다. 이렇게 스며들어간 어떤 인물의 삶이나 그가 겪은 사건, 그의 감응이나 감정이 입으로, 그리고 눈으로 ‘말’이 되어 나온다.

의미화된 기호인 말들은 사실 보는 이들에게 공감이나 동조를 요구하거나 무언가를 호소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명령문들이다. 슬픔은 슬픔대로 그걸 덜어달라 호소하고, 단호함은 단호함대로 마음을 다잡고 따라나서길 요구한다. 그렇게 모든 기호는 공감에 부응하는 어떤 생각이나 태도를, 혹은 행동에 대한 명령문을 간접화법으로 발송한다. ‘사천왕상’은 어디서나 이를 아주 잘 보여준다. 칼이나 탑, 비파 같은 지물(持物)을 들고, 추한 인물을 발로 밟는 포즈는 보는 이를 압도하고, 씰룩대며 올라간 볼은 입을 다물고 있어도 호령하는 듯하며, 크게 부릅뜬 눈은 그것만으로 강력한 명령문을 발송한다.

앞얼굴이 명령문이 함축된 기호를 방사하며 ‘의미화’하는 얼굴이라면, 옆얼굴은 부르고 답하는 공명을 통해 서로에 대해 ‘주체화’되는 얼굴이라고 대비할 수 있다. 우상 앞에서 절하는 동료들에게 분노하며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내던질 듯 머리 위로 치켜든 모세의 앞 얼굴은 우상숭배 금지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모세의 명령문을 발송한다. 신의 뜻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과 마주 보는 옆얼굴의 마리아는 신의 호명에 답하며 ‘성모’로 주체화되는 사건을 묘사한다. 유의할 것은 서양에서 ‘주체’를 뜻하는 subject는 신하를 뜻하는 말이란 점이다. 가령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신에게 응답한다 함은, “내 백성들을 이집트 땅에서 해방시키라”는 신의 명령을 받아들여 신의 종복이 됨을 뜻한다. 

그러나 앞얼굴과 옆얼굴의 대비는 그림이나 조각상을 보는 이와 떼어놓고 생각할 때만 유효한 듯하다. 앞얼굴로 보는 이를 향해 의미화된 기호를 방사하는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기호에 응답하며 주체화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가시관을 쓴 채 늘어진 그리스도의 얼굴이나 죽은 아들을 안고 비통해하는 성모의 얼굴은 그 고통의 의미를 알기를 요구할 뿐 아니라, 그 거대한 고통에 답하는 주체가 되기를 요구한다. 작품의 탁월성만큼 강한 명령문들이 그로부터 발송된다.

명령문을 발송한다는 점에서는 입과 비슷하지만, 입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눈이다. 입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데, 표정이 무언가 묵직하게 말을 하는 때가 있다. 그때 그 표정에 실린 명령문을 실어나르는 것은 시선이다. 나를 쳐다보는 눈이 있는 한, 입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내게 발송된 명령문을 듣는다. 입이 말하지 않기에 더욱더 강력한 명령문이 발송된다. ‘어떻게 하나 보자’는 의지마저 실린 침묵, 그것은 침묵이 아니라 외침이다. ‘하지 않으면 죽어!’라는 일종의 사형선고가 실린 강력한 말소리가 그 눈을 통해 나온다. 눈은 무섭다. 반면 정면인데도 그 눈이 나를 보지 않는다면, 호응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눈을 맞추지 않는다면, 입이 말할 때조차 문장들은 상대를 향한 명령문이기를 그치고 무심한 기호가 되어 입 주위로, 신체 주위로 흩어져버린다. 침묵이 진정 침묵이 되는 것은 이처럼 마주 보는 시선이 없을 때이다.

정면에서 마주 보고 있지만 마주 보지 않는 눈, 눈을 맞추지 않는 눈은 표정을 통해 발송되는 명령문들을 흩어버린다. 이 점에서 반개한 눈과 아래를 향한 시선을 창안한 굽타 시대의 인도 예술가들은 얼굴의 역사에서 더없이 획기적인 하나의 분기점을 만들었다. 불상 또한 다른 종교적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마주 보는 이를 향해 만들어지는데, 그 이전의 불상은 모두 마주 선 사람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마주 보는 이의 마음에 답하는 눈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동시에 마주 선 이에게 어떤 의미화 된 기호를, 그 기호에 실린 말 없는 명령문을 발송하는 눈이었다. 물론 표정은 평온하고 입은 기분 좋은 미소를 담고 있거나 적어도 침묵하고 있기에, 명령문은 소리 나지 않았지만, 눈이 보는 이의 눈을 향하는 한 그 침묵조차 상대적인 침묵일 뿐이다.

그러나 눈이 반개하며 시선이 아래로 향할 때, 그리하여 마주 선 나에게 눈을 맞추며 공명하길 요구하지 않을 때, 기호나 의미는 하향의 시선을 따라 가라앉는다. 주위를 떠도는 말소리조차 소리 없는 독백이 되어 신체 주위를 대기가 되어 흩어진다. 얼굴은 나를 향해 무언의 말을 건네길 그치고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대상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자신의 내면을 향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나’도 없는데 나의 내면이랄 것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하강하는 시선은 무언가를 비추기보다는 차라리 적정 속으로, 침묵 속으로 고요하게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

반개한 눈의 불상은 어떤 말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근의 말소리마저 흡수하여 지워버리는 절대적 침묵 속에 있다. 그 침묵 속에서 불상은 적멸의 고요함, 적정의 평온함 자체가 된다. 그렇게 그 불상은 시끄러운 번뇌와 부대끼는 일상의 세계로부터 멀어진다. 불상 앞에 있는 이가 속한 세계와 아주 다른 적정의 세계가 그 인근의 대기 속에 선다. 그 안에 들어오는 이 모두를 그 고요함과 평온함 속으로 이끄는 자장이 펼쳐진다. 그 자장에 실려오는 말 없는 감응이 상 있는 것에서 상 없는 것과 대면하게 한다. ‘성스럽다’는 세간의 말로 흔히 표현되는 어떤 것과 나를 대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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