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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_인터뷰] 다시 인문학/ 우리가 사랑한 저자 5편 : 고병권
인문MD 202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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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6_우리가 사랑한 저자_고병권.png

 

최근에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아주 오래 전부터 답변이 같아졌어요.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지냅니다. 제 생활이 단순합니다. 읽고 쓰고 이따금 읽고 쓴 것에 대해 말하고.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작년 가을에 읽고 쓰는 공간을 하나 열었습니다. 이름이 ‘읽기의 집’인데요.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때로는 조용히 글을 읽고 때로는 읽은 걸 가지고 함께 수다를 떠는 공간입니다. 제가 여기 집사입니다. 고집사라고 부르죠. 하지만 생활은 이전과 다를 게 없습니다. 제가 하고 있던 일 거의 그대로죠. 읽고 쓰고, 읽고 쓴 것에 대해 말하고. 다만 여기오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책상을 닦고 바닥을 쓰는 정도가 더해졌을 뿐입니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완간하셨습니다. 엄청난 기획이었죠. 이 시리즈에 관해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출판사의 처음 제안도 강의록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었고요. 그런데 모두 열두 권의 책과 열두번의 강연을 하는 것으로 기획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제안을 받았을 때 정말로 망설였습니다. 두 달에 한 권씩 책을 쓰고 그 사이에 강연을 계속 이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요.
실제로 착수했을 때 일은 제가 어림잡았던 것보다도 많았습니다. 샘플원고 단계부터 시작하면 집필에만 3년을 썼습니다. 책상에는 항상 세 개의 원고가 놓여 있었죠. 지난달에 출간된 책에 대한 강연원고, 이달에 출간될 책에 대한 교정지, 다음달에 출간될 책의 집필 원고. 모두가 일정을 엄수해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일을 할 수도, 누군가를 만날 수도 없었죠. 자연스레 일도 정리되고 사람들과의 연락도 끊겼습니다. 먹고 산책하는 일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본>에 대해 읽고 쓰는 데 바쳤습니다.

왜 이런 기획을 받아들였을까. 여기에는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독자들의 참여인데요. 일반적인 경우 저자가 원고를 쓰면 출판사의 편집을 거쳐 인쇄를 하고 서점을 통해 독자에게 배포됩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집필 전에 이 기획을 함께 할 독자를 모집했습니다. 제가 열두 권을 집필해가는 중에 열두번 독자들을 만납니다. 독자들이 기획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의 의견을 들으며 집필이 이어지는 거죠. 독자들은 제 쓰기를 지켜보고 의견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시리즈는 애초에 독자들이 <자본>을 읽어갈 때 제 의견을 들려주기 위해 기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독자들이 제 쓰기에 참여하는 것처럼 저는 독자들의 읽기에 참여하는 겁니다. 이 책은 누군가 <자본>을 읽어갈 때 동반자로 기획되었습니다. <자본>을 누군가와 함께 읽으면 더 좋겠지만, 혼자 읽더라도 그 독서를 둘이 하는 독서로 만들겠다는 심정을 담았지요. 당신이 혼자일지라도, <자본>을 읽는 길에 나섰다면, 이 책이 함께 걷는 친구가 되겠다는 심정으로요. 그래서 <자본>의 어디선가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할 때 기꺼이 제 의견을 들려주겠다는 마음으로, 가급적 자본의 어떤 페이지도 생략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 책은 <자본>을 대신 읽어주는 책, 요약해주는 책이 아니라, <자본>을 함께 읽어가는 책입니다. 부디, <자본>의 독자들, 그 수가 얼마이든 <자본>을 읽어갈 미래의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랍니다.

 

여러 책을 내셨는데,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빼고 쓰신 책 중 기억에 남는 책은?

여러 아이들을 낳았는데 어떤 아이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처럼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2001년에 첫 책을 펴낸 후 스무권 남짓 세상에 내보낸 것 같습니다. 믿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모든 책들이 다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최근에 펴낸 ‘북클럽자본’ 시리즈는 여러 책을 함께 썼기 때문에 각 권의 기억이 좀 흐릿합니다만, 20년 전부터 나온 모든 책들에 대해 저는 꽤나 선명한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보시기에 상대적으로 못나고 잘난 책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각 책을 펼쳐들면 그 책을 썼을 때의 기억이 솟아납니다. 그리고 그때의 사연은 모두 제게 소중합니다.

 

『생각한다는 것』이 선생님 저서 중에서 오래, 많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 책과 관련해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책은 아주 얇습니다만 제가 만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책입니다. 15년 전쯤 어느 초등학교 독서캠프에 초대된 것이 그 시작인데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철학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A4 용지 두세 장 정도의 메모를 해갔지요.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몇몇 철학자들의 생각을 빌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저는 ‘현장인문학’,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인문학을 공부하는 몇몇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철학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지요. 참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교도소의 재소자들을 만났고, 성매매여성 공동체의 여성들과 파업중인 노동자들, 야학에 다니는 장애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겪은 일들,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들을 들었지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제가 아는 어떤 철학자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철학자들을 반박할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강연 원고가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한 곳에서 들은 이야기가 다른 곳에 갈 때 더해졌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 A4 용지 두세 장이었던 원고가 수십 장으로 늘어났습니다. 저는 제가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생각들을 제가 아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 책은 제게 아주 각별한 책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책이에요.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셨죠. 글자도, 셈도 모두 살아오면서 깨치셨어요. 아들이 책을 쓴다는 걸 참 좋아하셨어요. 새 책이 나와서 드리면 두고두고 소리내서 읽으셨죠. 이해하기 쉽지는 않으셨을 거에요.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을 때는 니체와 차라투스트라가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헷갈려 하셨죠. 제게 ‘둘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고 묻기도 하셨어요. 그런데 <생각한다는 것>을 읽고나서는 제 손을 꼭잡고 말씀 하셨답니다. ‘이제야 자네 생각을 알게 되었다’고, ‘왜 그러고 사는지 알 것 같다’고. 아버님 간병하실 때도 저는 어머니가 그 책을 아버님께 몇 차례 읽어드리는 걸 봤어요.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제게는 이 책이 저와 어머니를 이어준 생각의 끈입니다.
 

고병권, 하면 니체와 마르크스가 생각납니다. 두 저자는 근대 사상가이면서도 탈근대를 꿈꾼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두 저자에 관해 많은 글을 쓰신 건, 선생님 역시 근대성을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방증일 듯합니다. 선생님께서 바라보시는 근대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요?

질문을 받고 보니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르크스와 니체 모두 모더니티, 즉 근대성 내지 현대성을 강하게 비판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근대의 ‘가치’ 개념을 비판하는 책들을 썼지요.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보여준 정치경제학 비판과 니체가 <선악의 저편>에서 보여준 도덕 비판은 이런 점에서 함께 고려해 볼만한 것입니다. 제게 ‘근대’란 ‘우리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우리가 마르크스와 니체가 비판했던 그 시대를 여전히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가 한 공부는 이들의 비판을 이해하고 이들의 비판을 따라 우리시대를 읽어보려는 노력, 말하자면 일종의 도제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근대성이라는 주제는 제 개인 주제라기보다 제가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던 때 아주 많은 사람들의 주제였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주의의 몰락과 지구화된 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 군사정권의 종식, 새로운 사회운동과 문화현상들의 등장을 목격했던 사람들의 주제,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1990년대 연구자들의 주제였습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당연시했던 많은 것들을 의심하고 비판했죠. 합리성, 동일성, 총체성, 보편성, 이성적 주체, 역사의 진보 등을 의심했고, 자본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등의 이념과 학교, 극장, 박물관 등의 온갖 제도와 시설의 역사적 발생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말 그대로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금의 저는 이런 연구들의 행방을 잘 모릅니다. 다만 제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공부를 시작하던 때 저를 붙들던 주제들, 즉 국가, 자본, 인간 등의 주제에 여전히 붙들려 있습니다. 근대란 무엇인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질문인데 다시 만나도 여전히 제게 너무 큰 물음입니다. 다만 저는 제가 잡고 있는 주제들, 아마 죽기 전에 끝내지도 못할 이들 주제들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할 뿐입니다. 저는 어떤 대상을 연구할 때 한계, 경계, 테두리를 살펴보는 편인데요. 이제야 인간이라는 주제를 붙들고, 근대인간학의 탄생에 관해, 그리고 근대적 인간의 경계 내지 테두리로서 장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다만 근대성으로 불리던 우리시대의 성격은 많이 해체되고 있다는 예감이 듭니다. 무엇이 도래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지금 우리시대의 국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탐사해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저술 활동도 꾸준히 하고 계시잖아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일 듯합니다. 선생님의 루틴을 유지하시는 비결, 궁금합니다.

오랫동안 제 생활에 큰 변화가 없는 걸 보면 지금의 일상이 읽고 쓰는 일에 최적화되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평온하다는 뜻은 아니고요. 제가 읽은 책, 만나는 사람, 참여하는 일 등등이 대부분 제 글쓰기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글을 쓰지 않을 때도,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어떤 활동에 참여하는 것 모두 글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식하지는 않지만 계속 글을 준비하는 셈이니 계속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글을 쓰는 일은 체력 소모가 많습니다. 저는 산책을 자주하는 편입니다. 특히 본격적 집필에 들어가면 매일 두 시간 가까이 산책을 합니다. 필사적일 정도로 산책을 빼먹지 않습니다. 산책을 하면 좋은 생각도 나고 체력도 회복되고요. 하지만 글쓰기에서 체력을 잃지 않은 것만큼 중요한 것은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호기심이라고 말했지만, 제게 글을 쓰게 하는 내면의 불같은 것입니다. 이 불을 태우는 기름이 계속 공급되어야 합니다. 제가 교사로 참여하는 장애인야학, 제가 집사로 있는 읽기의 집 등에서 저는 그런 걸 얻습니다. 반드시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 반드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자신에게 사라졌다면 더 이상 글쓰기는 의미가 없겠죠.

 

『화폐, 마법의 사중주』를 쓰셨고요. ‘북클럽 자본’ 시리즈 3권 주제가 화폐입니다. 3년 전 채널예스 인터뷰 때 가상화폐에 관해 질문 드렸죠. 그 사이에 비트코인 광풍이 있었고, 최근에는 루나가 폭락했습니다. 가상화폐의 등락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제가 근대 화폐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긴 했습니다만(근대적 화폐구성체의 성립), 최근의 소위 ‘가상화폐’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이따금 관련 뉴스를 읽다가 몇 가지 단상이 들 뿐이죠. 사실 제게 ‘가상화폐’라는 말은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화폐라는 게 기본적으로 ‘가상적인’ 성격을 갖고 있거든요. 주화나 지폐도 그 화폐성(moneyness)은 그 물성과는 다른 것입니다. 근대 초기인 16세기 대외은행가들은 환전할 때 현실에서 쓰이지 않는 가상의 화폐, 그러니까 계산단위로만 기능하는 화폐들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비트코인 등 최근의 화폐에 새로운 점이 있다면 ‘가상적’이라는 성격보다는, 블록체인 등의 암호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가상화폐’보다는 ‘암호화폐’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사실 이들 암호화폐는 화폐로서의 기능보다는 투자 상품의 성격이 훨씬 강한 것 같습니다(본질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화폐가 수행하는 기능을 따라서 이들 화폐들을 살펴보면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현재 암호화폐들은 가치변동이 너무 심해서 가치척도로서 적당하지 않습니다. 교환수단(유통수단)으로서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거래의 불투명성 때문에 암거래와 돈세탁에 활용되기 쉽죠. 가치축적 수단으로서도 안정성이 없습니다. 사실 암호화폐 거래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그것이 가치가 안정적이어서가 아니라 불안정하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대박을 터뜨리고 싶은 투기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일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만, 모든 화폐들이 그렇듯이, 담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화폐로서 기능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이제까지의 근대 화폐들은 시장에서 가치가 보장된 금 같은 상품을 담보로 잡거나 국가권력의 보증을 담보로 삼았죠). 지금처럼 금융이 과도하게 팽창한 국면에서는 투기 대상이 되기 쉬운 상품일 뿐이죠. 아직까지는 비싼 마차와 말을 모두 팔아야 겨우 하나 구할까 말까 했던 17세기 네덜란드의 튜울립 뿌리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500 리브르에서 1만8천 리브르까지 가치가 솟았다가 다시 무가치한 쓰레기가 된, 18세기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존로(J. Law)의 회사 주식과 그가 발행하던 은행권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가상화폐 외에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엄청 커졌죠. 팬데믹으로 엄청나게 팽창했다가, 지금은 빠졌습니다. 마르크스가 글을 쓰던 시절에도 자본주의 작동 방식은 비슷했죠?

마르크스 이전에도 지금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자본의 싹이 온실에서 쑥쑥 자라던 17-18세기, 주식 및 채권 시장이 만들어지고 은행들이 설립되었던 시기에도, “아직 잡지도 않은 청어, 아직 수확하지 않은 밀을 선물거래로 팔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돈을 수중에 가지고 있지 않고서도 주식투기를 하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요. 마르크스는 주식이나 채권 등 일종의 권리증서가 시장에서 거래되고 자본처럼 행세하는 현상을 보며 ‘가공자본’(fictious capital)이라는 말을 썼는데요. 이것들은 현실의 수익이 아니라 미래 예상 수익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투기적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자본은 팽창했는데 산업에서 수익이 나지 않을 때 자본의 투기적 속성은 매우 커집니다. 물론 마르크스가 글을 쓰던 시절에는 구글과 페이스북이 없었고 골드만삭스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은 19세기 맨체스터의 면방직공장과 런던의 주식시장에서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자본>에는 호황기에 사업을 지나치게 확장했던 조선회사들이 금융공황을 맞아 무너지고 그로 인해 조선노동자들의 삶이 몰락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마치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조선업에서 일어난 일처럼 보입니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빈민들이 도시에서 밀려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150년 전 런던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니까요. 우리도 그 때의 사람들처럼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19세기 면방직공장과 21세기 전기자동차공장은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냥 ‘다 똑같아’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원리가 같아도 그것이 관철되는 형태나 양상은 매우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바꾸려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알아야 합니다. 자본은 원리상 증식한다고 해도, 21세기 구글의 수익모델은 19세기 면방직공장과 다르며, 노동자들의 노동형태나 방식도 크게 다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원리의 동일성만큼이나 그것이 나타나는 형태나 양상의 차이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기획의 제목이 ‘다시 인문학’입니다. 인문학, 사회과학의 역할을 묻고 싶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법도를 일깨우고,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해보는 학문.. 뭐 이런 식의 재미없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 아니테고. 글쎄요, 제가 하는 공부, 제가 쓰는 글, 제가 참여하는 활동의 ‘역할’이 무얼까요. 사회과학 전공자로서 학위를 받기는 했습니다만 사회과학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인문학에 대해서는 제가 요즘 이따금 떠올리는 표현이 있습니다. 듣는 것과 알아듣는 것, 보는 것과 알아보는 것의 차이에 인문학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듣는 것, 보는 것의 영역은 자연학의 영역입니다만, 듣는 것으로는 똑같아도 알아듣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죽고 싶다’고 말할 때, 물리적 주파수로는 틀림없이 ‘죽고 싶다’인데도, 그것을 ‘살고 싶다’로 알아듣는 힘, 그것을 인문학이 제공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 사물들을 겪으며 혹은 동일한 사물을 다른 조명 아래서 보는 체험을 많이 하면서, 똑같은 사물의 운동도 다른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는 힘, 무엇보다 그런 운동이 우리 삶에서 갖는 의미를 새롭게 포착할 수 있는 힘을 인문학이 주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깊이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냥 지금 떠오른 생각이 이렇습니다.

 

선생님께 영향을 준 사람, 혹은 책을 꼽아주실 수 있나요?
제게 영향을 준 사람이나 책은 아주 많겠지만, 그 각각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누구 혹은 어떤 책의 영향이 더 컸는지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저 좋아했던 사람이나 즐겨읽은 책을 몇 권 나열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읽고 쓰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이진경 선생님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의 글도 많이 읽었고 무엇보다 연구자 공동체를 함께 하면서 밥먹을 때든 산책을 할 때든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유너머 시절에는 고미숙 선생님도 아주 좋아했고요. 선생님의 글도 글이지만 공동체를 꾸려가면서 선생님이 보여준 삶의 태도 같은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노들야학에 와서는 박경석 선생님의 말과 행동에 큰 감화를 받았고요. 많이 읽고 또 좋아하는 작가는 스피노자, 마르크스, 니체, 루쉰 등 입니다.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를 대자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것 같고요. 어떻든 지금 떠오르는 이름들은 이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받은 영향을 잘 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 주변의 친구들 아니면 멀리 있는 어떤 독자가 저 자신이 받은 영향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3년 전 채널예스 인터뷰 때 이야기를 나누며, ‘갈수록 책이 안 팔린다’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오랜 기간 다양한 책을 쓰신 저자로서 보시기에, 과거와 현재 출판계는 어떻게 다를까요? 2편인 우석훈 저자님은 책을 내서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에서 유명한 사람이 책을 내는, “책이 후시장”이 되었다고 분석해주셨습니다.

출판계는 정말 잘 모릅니다.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좀 무책임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만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제 책이 예전보다 안 팔린다는 것 정도입니다. 하지만 독자들과의 만남은 어떤 점에서 더 빈번해졌습니다. 사회관계망을 통해서 작은 모임들에 초대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더 늘었습니다. 제가 쓴 책의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의 전체 규모는 줄었지만 독자그룹이 작게 여러 개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편에는 작가의 명성으로 혹은 입소문을 타고 시장을 휩쓰는 책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소규모로 유통시키는 책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제가 출판계에 대해 잘 모릅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이 있나요? 없다면, 혹시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장 쓰고 있는 책은 없습니다. 지금 시작한 ‘인간의 국경’을 탐사하는 연구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 대략 4~5년 정도 후에는 관련 책을 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 사이에 여기저기 짧게 쓴 글들을 모아 작은 에세이집을 낼 수도 있고, 마르크스의 철학에 대해, 그리고 중국 작가 루쉰을 읽으며 문학에 대해 뭔가 써보고 싶어 메모를 해둔 것이 있는데, 이것들을 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책은 좀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끝으로 예스24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여년 첫 책을 펴냈습니다. 서문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썼더군요. “모든 책들은 동료를 구하는 몸짓이다.” 그리고 이번에 펴낸 새 책에는 이렇게 썼습니다. “한 사람이어도 좋습니다. 직접 이 길을 걷고 싶은 사람이 당신이라면 나는 당신과 걷겠습니다. 이 길에서 우리는 왕보다 고귀하고 부자보다 풍요롭습니다.” 20년 전의 글과 20년 후의 글이 같아서 좋았습니다. 책을 통해 만난 당신은 제게 그런 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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