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본』이 ‘상품’에서 시작하는 이유
마르크스는 첫 단락 첫 문장에서 마르크스는 ‘상품’에서 시작하는 이유를 밝혔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방대한 상품더미’로 나타나는데, 개개의 상품은 부의 기본형태이다. 그러므로 우리 연구는 상품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한다.”저자에게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좀 이상한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것의 정체를 밝히는 데서 시작한다.’애덤스미스는 부의 ‘실체’로 제시한 것은 ‘노동’이다. 상품들의 가치는 그것에 들어 있는 인간의 ‘수고’만큼이라는 말이다. ‘국부론’에서 ‘국가의 부’의 원천은 사람들의 근면한 노동이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부유한 나라라는 생각이 담겨있다.‘진정한 부의 척도’에 대한 고민을 더 명확히 한 것은 리카도로 ‘가치’와 ‘부’에 대해 논하였는데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바로 이 19세기적 의미에서의 ‘부’ 즉 ‘가치’에 관한 것이다.『자본』은 ‘상품’에서 시작한다기 보다 ‘가치’에서 시작한다. ‘가치’는 자본의 출발점이다. 마르크스는 ‘가치’를 상품세계의 시민권같다고 했다. ‘부’즉 ‘가치’는 직접 나타나지 못하고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상품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가치는 직접 나타나지 않으므로 누구도 가치를 직접 보거나 만질 수 가 없다. 하지만 가치는 없는 게 아니라 나타난다. 상품은 가치가 나타나는 형태, 즉 가치의 현상형태인 셈이다. 가치가 깃든 사물을 우리는 상품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이런 특특한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자본』의 첫 문장의 의미하는 바이다.
2. 상품에 깃든 유령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이 탁월한 이유는 ......(마르크스가) 흔하디흔한 상품의 ‘아주 기괴한’성질에 놀랐다는 데 있다.......기성 경제학 체계는 평범한 상품을 기괴한 것으로 보는 눈에 의해 무너진다.”마르크스는 상이한 두 물건의 교환에 크게 놀랐다. 사용가치가 다른 두 물건이 일정 비율로 교환된다면 이 교환이 물건의 유용성과 관계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무언가’가 있는데 그는 그것은 유령이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자면 ‘유령적 대상성’일 뿐이다. 그는 상품의 핵심이 ‘유령’이 있음을 간파했다. 하지만 그 ‘유령’과 더불어 혁명을 수행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혁명은 그 ‘유령’을 몰아내는 데 있다고 보았다.
3. 추상 노동의 인간학
상품가치의 척도는 ‘노동’이다.상품의 ‘가치’는 그 자치로 드러나지 않고 다른 상품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표현된다. 상품은 사회적 존재이다. 상품은 혼자 존재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천재성은 노동가치설을 주장한 데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상품들은 노동생산물’이라는 당대의 노동가치설을 변형하고 새롭게 해석한 것에 있다.
상품에 체현된 노동은 이중적이다.마르크스는 ‘현물로서의 상품’을 말할 때와 ‘가치로서 상품’을 말할 때 거기서 상응하는 노동을 구분했다. 상품에 체현된 노동을 ‘이중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의 이중성(사용가치와 교환가치)에 노동의 이중성을 대응시킨 것이다.
상품의 두 측면에 상응하는 노동의 두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구체적 유용성을 가진, 다시 말해 사용가치를 가진 현물을 생산하는 ‘구체적 유용노동’이며, 다른 하는 상이한 상품들의 교환가치(더 엄밀히 말하면 ‘가치’)를 생산하는 ‘추상노동’이다. 여기에서의 추상노동은 정신노동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고,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상관없이 구체적 노동과 대비해서 부르는 말이다.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이다. 추상노동에서는 땀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손을 쓰지 않는 노동도 있을 수가 있다. 하지만 모두 인간의 노동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근대사회와 평균적 인간은 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다. 개인이 권리의 주체로 등장한 근대에 들어 개성이 출현했지만 그 개인들은 한결같이 닮았다. 사람들은 닮아가면서 고립되고 있으며 동질화되면서 개별화되고 있다.
태초에는 추상노동이 없었다.자본에서 말하는 추상노동이란 역사적으로 출현한 특수한 형태의 사회, 즉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갖는 독특한 성격이다. 마르크스는 추상노동을 가능케 하는 역사적 조건에 대해 “가치표현의 비밀은 인간의 동등성 개념이 대중의 선입관으로 확립될 때만 해명될 수 있다.” 즉 인간존재가 동등해야 하며, 노동의 형태가 동등한 능력의 발휘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단순노동이 광범위해야 한다. 즉 인간의 정치적해방(신분해방)과 단순노동의 지배가 필요한 것이다.
상품에는 ‘사회적인 것’이 들어있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는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산출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양이라는 말 앞에 ‘사회적’이라는 말을 넣었는데 그것은 한 상품을 만드는 데 특정 개인에게 필요한 노동시간이 아니라 그 사회의 생산자들이 평균적으로 필요로 하는 노동시간이 가치를 규정한다고 하였다.“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노동숙련도와 노동강도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시간이다.”
상품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말은, 상품에는 ‘사회적인 것’이 들어있다는 말이기도 하다.상품의 가치 결정과 관련해 생산자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차원의 존재는 자본주의에서 빈발하는 위기, 즉 공황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극복이 이 ‘사회적’이라는 말의 성격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
- 진짜 노동자라고 할 때에는 땀냄새가 나지 않는 사무직이나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되었다고 하는 지금에도 그런 이야기를 보거나 듣기도 한다. 진짜 노동자는 무엇일까.
댓글 2
-
유택
3강 질문
Q1) p30 “그래서 우리는 빛나는 금덩어리를 보면서 그 안에 가치의 원자라도 있는 듯 착각합니다”
누굴 바보로 아시나요? 읽다 보니 은근 기분 나쁜데요^^ 물신주의.
돈이 불에 타는걸 보고 돈 그 안에 ‘가치의 원자’가 들어 있으니 돈을 주으려고 불속으로 들어갔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죽은 사람을 바보 같다 내지는 물신주의자다 라며 종이 쪼가리 줍느라 죽었다고 비판합니다. 근데 과연 온당한 것인가요?
돈은 다른 물건과 등가교환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 사회에서 사는 이상 그 돈은 필요하겠지요. 생산수단을 다 뺏겼기에 오직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만이 우리의 실존적 출발점이잖아요. 물론 이 시대라는 한정속에서요.
물신주의(패티시즘) 이라는 말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소비양식를 분석한 이후, 즉 사후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보이기에 갖다 붙힌 이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독자로써 은근 기분 나빠져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 서술방식이 변증법적이라 이런걸까요? 좀 읽으며 기다리면 괜찮아질까요? 하나 하나 개념이 산출되는 방식으로 차곡 차곡 앞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까요. ‘물신주의’라고 우리를 비꼬듯 놀리듯 비판하기 이전에, 왜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가 책에서 먼저 서술 되었더라면 기분 안 나빴을 것 같은데요.^o^Q2) p41 “우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가치 창출이라는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잉여노동으로 잉여가치가 창출될테고 그것이 순이익이 될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표면적으로는 얼마짜리라 불리우며 등가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마지막에 가서는 ‘자본가’쪽에선 가치가 창출되잖아요.
빵집을 예로 들어볼게요. ‘진정으로 선한’ 사장님이 힘들게 가게를 임대하고 고생해서 생산기계와 생산 원자재를 사들이고, 겨우 변덕스런 알바생을 어르고 달래 고용해서 빵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었다고 칩시다. 그 어디에도 도둑질은 없지요. 공정하게 제값 주고 생산수단을 구매했고, 사회적 합의에 걸맞는 노동 임금을 알바생에게 주었고, 소비자와 동등한 교환을 했습니다.
하지만 빵집 사장은 돈을 벌지요. 왜일까요? 어디에서 가치가 창출되었을까요? 불불노동, 즉 임금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제공했지만 지불 받지 못한 알바생의 ‘보이지 않는 노동’ 혹은 ‘그 부분만큼은 임금이 공평하게 지불되지 않은 영역의’ 잉여노동에서 잉여가치가 창출된거잖아요? 건축사무소도 마찬가지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빵집 사장님도 건축사무소 사장님도 윤리적으로는 선한 분들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마르크스가 누차 강조하는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사장님이 쏟아 부은 사장 개인적 노동은 어떻게 계산할 수 있는가요?
가게임대+생산수단&원자재구매+임금지불+’사장님의 노력’ 그런데도 순이익(잉여가치)이 남는 이유는 오롯이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착취해서 라고 마르크스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좀 더 공부를 해야겠지만요. 스포일러로 강사님께서 제 궁금증에 미리 답변 주실 수 있으신지 여쭙습니다.Q3) p82 “1)가치의 실체로서 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이 아니라 추상노동이라는 것이다. 2)상품의 가치를 규정하는 노동의 양이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애덤 스미스에서 리카도에 이르는 ‘노동가치설’과 마르크스의 ‘노동’을 보는 관점에 어떤 변별점이 있는지 항상 궁금했었거든요. 이 책에서 어떻게 다른 건지 간략히 정리를 해 주셔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토론주제] 2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1~3장)
Q1. “자본주의가 이상하게 보여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2권 > 서문, 1장)
(2권 > 서문) “자본주의가 이상하게 보여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이해한다는 건,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독특한 사회형태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2권 > 1장 pp22~23) 맑스는 “우리가 고찰하는 사회형태에서는” 등 한정적 표현을 자주 쓴다. 물고기가 물을 보지 못하듯,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형태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특수한지, 우리가 얼마나 이상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이상하게 보여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정상적인 것의 기괴함을 보는 눈이 없으면, 자기시대를 비판할 수 없다.
Q2.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방대한 상품더미’로 나타난다”!? (2권 > 1장)
Q3. 맑스의 [자본]은 왜 상품에서 시작하는가? (2권 > 1장)
“그러므로 우리 연구는 상품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한다.”
Q4. 상품이란 무엇인가? 어떤 물건(사물)이 상품이 되는가? (2권 > 2장)
Q5. 상품의 사용가치 / 교환가치 / 가치란 무엇인가? (2권 > 2장)
Q6.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이란 무엇인가? (2권 > 3장)
Q7. 추상노동이란 무엇인가? 구체노동과 추상노동은 어떤 관계에 있나? (2권 > 3장)
Q8. 추상노동이 전제하는 인간학이란 무엇인가? (추상노동은 어떤 인간을 전제로 하는가?) (2권 > 3장)
Q9.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딪힌 역사적 장벽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상품교환의 공통성ㆍ화폐의 존재를 인식했지만, 교환가치와 추상노동의 개념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왜?) (2권 > 3장)
Q10. 정치경제학의 ‘노동가치설’이란 무엇이며, 맑스는 이것을 어떻게 변형했나? (2권 > 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