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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테이블

예술과 철학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다른 층위에서 표현될 뿐 사유의 태도는 같은 지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서로의 생각을 훔쳐 사생아를 낳는 반복이 이 둘의 역사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화성과 금성의 남녀처럼 서로에게 에로스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술가는 물에 잠긴 달을 표현하고, 철학자는 달이 잠긴 물에 대해 말하니 말입니다. 매끄러운 테이블은 이 둘 사이 패인 홈을 지우는 역할이 되고자 합니다. 예술가는 철학자의 언어를, 철학자는 예술가의 이미지를 서로 차용하고 재생산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예술과 철학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 어떤 새로움은 모두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현재에 대한 저항이 결여되어 있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지만 다행히 우리는 시작의 힘을 알고 행동합니다. 그 행동이 예술과 철학입니다. 물론 그 예술이, 그 철학이 종종 피곤으로 몰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유하는 행동이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매끄러운 테이블은 사유하는 행동이 시작되는 공간입니다. 어떤 새로움으로 향하는 시간입니다. 대화에 누구나 참여하여 생각을 확장, 혹은 해체할 수 있습니다.

ㅡ 5월 14일 저녁 7시에 시작하는 매끄러운 테이블_4150은 이혜진의 작업, Ten lullabies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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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Ten lullabies, 피사체는 다가오는 매 순간이었다

이 사진들(Ten lullabies)은 2011년  영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찍었던 것이다. 벌써 십여 년이 지났고 이후에는 사진과 관련 없는 일을 했으니 꽤 멀리 있는 작업이다. 그래서 왜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정리해 보려면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물론 이 사진들로 당시에 졸업 논문도 썼고 책도 만들었으니 작업에 대한 정리는 이미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논문을 쓰고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외국어로 글쓰기를 해야 하는 현실적인 한계가 많은 것을 어지럽혔다. 결과적으로 이 사진들은 엉뚱하게 포장된 채 끝났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거기서 멈추었다. 낯선 공간에서 다른 언어로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그때의 나는 이 작업에 대해 명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년 남짓한 외국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만들었던 그 책을 몇 명에게 주었다. 꼼꼼히 보지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업한 의도를 물어주길 기대했다. 솔직히 누군가가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혼자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후 이 사진들은 어쩔 수 없이 침묵했다. 그러다 불과 몇 달 전, 눈먼 노신사를 만났다. 그는 내가 만든 책을 보지 못했음에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이 사진들을 찍고 있는 그때의 나였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어쩌면 이 순간을 보고 있을 나는 점점 선명해졌다.

 

ㅡ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다는 것은 프레임 안으로 대상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스냅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 내게 피사체는 응시의 대상입니다. 피사체가 비스듬한 이미지로 떠돌고 그 자리에 기억과 환영의 이미지가 겹쳐 보입니다. 이 순간을 푼크툼(punctum)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 사진적 용어는 감상자가 사진을 보면서 가지는 개인적인 감성의 균열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되죠. 하지만 피사체를 응시하는 순간에도 라틴어로 ‘찌름’을 의미하는 푼크툼은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설명할 수 없는 당혹감은 웅얼거림으로 남게 됩니다. 내가 했던 작업 대부분이 텍스트가 걸쳐진 사진인 것도 이런 경험을 가져서 입니다. 언어의 규칙과 제한을 넘은 텍스트가 사진 이미지에 상처를 내는 작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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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don't see Do C" 작업 중에서)

ㅡ 그러나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치면서 웅얼거림은 일상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말이 소통의 기호가 되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고 있어요. 그러나 이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아요. 말이 습관처럼 나오지 않으니 일상에서 더듬거리며 생각하게 되고 머뭇거리며 회의하게 됩니다. 요즘은 시제 구분이 정교한 영어의 문법으로 사진을 보곤 합니다. 웅얼거림이 발생하는 응시의 순간이 어디쯤인지 들여다보고 있어요.

 

ㅡ 사진은 대상이 그때 그곳에 존재했음을 보여 주는 과거의 흔적입니다. 이를 영어의 시제에 따라 내가 했던 작업을 구분해 보면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과거 완료이고, 셔터를 누르기 전 웅얼거림이 발생하는 순간은 대과거이고, 대상을 피사체로 마주하는 시간은 대-대과거가 됩니다. 이렇게 시제를 구분해 보니 내가 사진을 찍는 과정은 결국 대-대과거에서 과거 완료로 이동하는 순차적인 시간의 진행 방향을 따릅니다. 그러나 이 순서는 언어가 정해 둔 시간의 방향대로 인식하는 것이겠죠. 여기서 의심하게 됩니다. 웅얼거림이 발생하는 순간은 이미 언어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데 과연 시제로 구분할 수 있을까? 없을 것 같습니다. 웅얼거림은 언어의 빈틈으로 무의식이 끼어든 꿈꾸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억과 환영이 오버랩 된 우연의 이미지가 웅얼거림만 떠돌게 만들죠. 이 무질서의 순간은 의식 너머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ㅡ 자주 가는 언덕에 키 큰 버드나무가 있어요. 그 나무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그 나무를 찍으려고 카메라를 통해 보는 데 버드나무의 좌우가 바뀌어 있었어요. 오래전부터 사용했던 웨스트 파인더 카메라의 특성이라 당연한 일인데도 그 순간은 완전히 다르게 보였어요. 마주했던 버드나무, 기억과 환영의 웅얼거림, 좌우 반전된 버드나무의 이미지가 마치 과거, 현재, 미래로 다가왔습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미래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웅얼거림이 미래를 불러들인 걸까요? 집에 돌아와 이전 사진에 걸쳐진 텍스트를 보았습니다. 모두 내 안의 시간만 결정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이미지의 웅얼거림만 떠돌고 있었던 겁니다. 다른 시간은 상상한 적도, 소유한 적도 없었던 거죠. 마치 과거 완료의 시제에 내가 갇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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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버드나무를 응시한다는 것은 버드나무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의 웅얼거림은 두 시간이 교차하는 것이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시간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이를 표현하고 싶어 내가 보았던 버드나무 이미지와 카메라를 통해서 본 반전된 버드나무 이미지 사이에 텍스트를 두는 형식으로 작업을 해 보았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가졌던 놀라움을 연속 사진(sequence photo)으로 만들어 보았죠. 이 방식이 사진의 문법으로 본다고 해도 억지는 아닌 것 같았어요. 오늘의 내일이 며칠만 지나면 지나간 오늘과 내일로 모두 과거가 되듯 우리는 시간을 과거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죠.

 

ㅡ 그럼에도 여전히 언어의 규칙은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웅얼거림의 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순차적으로 오지 않고 동시에 덮쳐 오는데... 하지만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일상은 순차적으로 진행됩니다. 조금 전에 점심을 먹었고, 내일은 약속이 있고... 그리고 다시 지나간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고… 이렇게 이어 붙이니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것 같기도 합니다. 시간의 바깥에서 보면 이 셋은 하나의 흐름일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은 무한히 만들어지겠죠. 내가 버드나무의 시간을 만났을 때 다른 시간의 흐름이 생기듯 지금 당신과 나는 또 다른 시간의 흐름에 있고… 어쩌면 여태껏 살아왔던 모든 일상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시간의 흐름이 겹겹이 지나갔고, 앞으로도 그렇겠죠. 단지 지나간 내가 그 흐름을 억지로 막고 있지는 않았나 싶어요.

 

ㅡ 자장가는 완전히 깨어 있을 때는 노래가 들려도 들리지 않고 완전히 잠들었을 때도 듣지 못합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완전히 깨어있거나 완전히 잠들었을 때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포착할 수 없습니다. 허술한 기억과 예측이 그 흐름을 막고 서 있는 거죠. 하지만 자장가를 듣는 순간처럼 시간의 경계가 느슨해질 때 다른 시간을 꿈꾸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됩니다. 얼핏 보았던 그 순간을 사진과 텍스트가 과연 기념할 수 있을까? 애초에 표현 불가능한 피사체를 두었던 건 아닐까? 내 대답은 실패한대도 이 작업을 한동안은 하겠다는 겁니다. 내가 가졌던 시간의 담벼락이 낮아지고, 당신의 시간에 초대된 지금처럼 다른 시간을 만나는 놀라움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A man who can’t die          

     I was cold and hungry and completely lost when I suddenly realized. At first, I looked for a bench where I could sit down, but most benches had been taken by others who looked very happy, unlike me. So I just sat on a kerb beside the road and I looked at myself.

     I was wearing quite a nice blue velvet jacket, neat blue jeans, a shirt and blue suede 신발. I seemed to be obsessive about blue. I put my hands into the pockets of my clothes to find something, a clue such as a wallet or ID card, and money. Sure enough there was a blue leather wallet inside the pocket of my jacket, and I could see cash and credit cards as well. Unfortunately, I didn’t find my ID card, so I still didn’t know who I was, why I was there and how I had come to be there at that moment.

     One thing I got from the cards was a strange name, Robert Allen Zimmerman sounded Jewish, but I didn’t have any idea who that could be. Yet, I would not be able to ask the credit card company who I was as they would think I was either a mugger or a crazy guy.

     Anyhow, I could no longer think about myself since I was starved and smelled familiar aromas from the surrounding restaurants. I decided to go to a pub with a blue roof as I felt not only hungry but also thirsty; I needed to have a cool beer. While I was waiting for my menu after I had ordered, I looked around the hall. There were only two old men, sitting at different tables. One was already dead drunk and the other one was keen on playing Sudoku on the newspaper; both looked like drab old men. 

     After a while, a waiter came bringing my menu and gazed at me with no expression. He was short and fat, and on the back of his left hand there was the tattoo of a woman’s face. I thought she might be his impossible love, then ignored it and gulped down the beer, started to eat my fish and chips. It would be the best meal I had eaten even thought I could not remember what had happened before. Actually, I hadn’t expected to taste as good as it did because of the only two old customers and the unkindness of the waiter’s appearance.  When I was full I tried to recall who I was again but remembered nothing.

     At that time a woman came into the restaurant, wearing long red scarf and dark sunglasses, who then sat down in an old armchair beside a window without any hesitation, seemingly a regular customer. I thought her black short hairstyle was good on her white skin and slim figure. Suddenly, I realised she was the woman in the tattoo of the back of the waiter’s hand. She slowly took off her sunglasses, looked at me blankly. I smiled unnaturally, but she seemed not to see me.

     She seemed to simply enjoy the sunlight through the window for a while, as she didn’t order anything. I tried to find the waiter, but he must have already left since there were other guys behind the bar. I was so curious about her that for the moment I totally forgot about myself and just looked at her for a while.

     Then I stepped up to her and said, ‘If you don’t mind I’d like to buy a glass of wine for you’

     She only smiled faintly, never answering, but I thought it was a gesture of assent to my proposal. After I ordered a bottle of wine I sat down on the chair at her table. Her eyes were still vacant, only then I knew she couldn’t see anything and saw a long stick beside her.

     I thought, ‘It doesn’t matter, I just need to chat with someone, anyway she is still attractive.’ I started to talk about the weather as the beginning of typical conversation.

     I introduced myself Bob, who had moved there the previous week, to her. She told me her name was Marian; she had got a car accident a year before and after that she had lost her eyesight.

     She was more cheerful than I expected, and our interesting dialogue continued until we drank up the bottle of wine. Whenever she asked me about my personal stories I lied spontaneously; I used to be a singer and poet, but now I was interested in drawings, and I was single. Additionally, I didn’t need to care about my facial expression when I lied. It’s weird that although I didn’t remember even my name, I pretended to be Bob who was a fictional man made by me, that, moreover, as time went on, the lies made me very comfortable and safe. Perhaps I enjoyed lying about myself more than talking with her. 

     She left with a ‘thanks’ after she had answered the phone, and the next moment I realized the fiction was over. I looked at her through a window; she was running, grabbing the stick – she didn’t look blind, but as an athlete. ‘She also lied to me and enjoyed my lying’ I thought and felt ashamed of myself, because she must have seen all my facial expressions while we were talking. I suddenly wondered what I look like, so I went to a toilet.

     There was a run-down old man in the mirror: thinning white hair, a blotched nose, and drooping shoulder, looking much over 60 years old. I had thought I was a 40s’ dandy guy who was fond of blue and seemingly rich. I never thought I would look so old. Reality was severe. As if all his blue clothes were a shroud. I took out my blue wallet and then looked at its inside carefully. There was a note folded up between the cards.

    ‘ I am a patient suffering from alcoholic dementia. So, sometimes I totally forget who I am, but now my mind is so clear. I have no family and no friends because of my fucking stupid behaviour. My life is abominable, so I want to quit it. I will kill myself, which would be better than keeping at it. If I see this when I have lost my mind, I SHOULD JUMP DOWN OR DASH AT A CAR’

    I felt faint, disgusted, and saw the yellow dust in the wind.

by Hyejin Lee.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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