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춘언니] 영화리뷰2. 13년-4464일, 흐르는 시간처럼

류 재 숙 (작가, 수유너머104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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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춘언니] 영화리뷰2_시간이야기. 13년-4464일, 흐르는 시간처럼  <<<

 [재춘언니] 영화리뷰3_투쟁이야기. 그는 법안으로 들어가기를 멈추었나  <<< 

[재춘언니]는 콜트콜텍의 폐업-정리해고에 맞선 해고노동자 임재춘의 13년 동안의 이야기다. 그는 30년동안 기타를 만든 기타 기능공이었다. 콜트콜텍은 경영위기와 노사갈등을 이유로 2007년 부평의 콜트공장과 대전의 콜텍공장을 폐업-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임재춘과 동료들은 2019.4.23일 노사합의에 이르기까지 13년 4464일 국내 최장기간 투쟁을 이어간다.

[재춘언니]는 이수정감독이 8년 동안(2012~2019년) 임재춘과 콜트콜텍 투쟁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로 2020년 25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 2020년 46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특별상을 받았다. 이수정감독은 [미술관 옆 동물원], [우렁각시], [감자심포니], [깔깔깔 희망버스], [시 읽는 시간] 등 다양한 작품에서 프로듀서와 연출을 맡았다.

 
▲격렬한 분노와 투쟁전술로서 채우기에 13년은 정말이지 너—무 긴 시간이다.

  그는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투쟁을 아무리 해도 콜텍 사장 박영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재춘언니] 내가 이 싸움에서 주목했던 것은 ‘시간’이었다. 재춘이 13년간 떠나지 않고 농성장을 지켜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회사측의 말도 안되는 해고통보에 분노했을 것이고, 분노가 힘이 되어 투쟁을 끌고 갔을 것이다. 삼보일배, 오체투지, 단식농성, 고공농성, 공장ㆍ본사 점거투쟁, 해외 원정투쟁, 민사ㆍ형사ㆍ행정소송까지······, ‘죽는 것빼고 다 해봤다’는 말처럼. 하지만 격렬한 분노와 투쟁전술로서 채우기에 13년은 정말이지 너—무 긴 시간이다.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는 회사의 태도 앞에서 분노는 무력감으로 바뀌고, 자본에 대한 원한은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쉽게 변질된다. 춘원 이광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친일로 돌아선 것도 일제 말기였다. 그들도 처음부터 ‘변절’한 것은 아니었다. 35년(1910~1945)의 시간은 모든 것을 무력화시킨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해방은 요원하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장하는 일제의 권력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일본의 지배가 정의가 아닐까?” 일제 점령기가 20년, 30년을 넘어서자, 시간은 ‘지금 현재’를 합리화한다.

“얘기했잖여, 도망가고 싶다고.” / “근데, 왜 안 도망가는 거야.” / “바보지, 뭐” ([재춘언니], 감독과 재춘의 대화) 싸움이 시작될 무렵 12살이었던 재춘의 아이들은 이제 20대가 되었고, 44살이었던 재춘도 50대 중반이 되었다. 13년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시간이다. 긴 시간 답도 없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른 사람이었다면 자본에 대한 분노나 투쟁의 대의를 말했을지도 모른다. 재춘은 그냥 ‘바보’라서 그렇다고 한다. 재춘의 대답에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듣는다. 재춘이 스스로 바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똑똑한 이’는 벌써 자기 살 길을 찾아갔을 터.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말하는 것처럼 ‘똑똑하지 못해서’ 묵묵하고 우직해서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대의나 신념이 아니라, 동료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다. 전선이 허물어지는 것은 훨씬 많은 경우, 자본의 탄압이 아니라 동지들의 이탈에 의해서이다. 함께 했던 동료가 떠나는 것이 이해되는 만큼, 그가 떠났을 때 남아있는 사람들의 막막함을 그는 안다. 떠나는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를 그는 의리로 메꾼다. 다른 한편 그를 남아있게 한 것은 ‘도망가고 싶은’ 재춘의 마음을 읽고, ‘왜 도망 안가?’하고 묻는 감독 같은 이들, 이제 가족같은 사람들 때문이다. 즉 재춘언니라는 이름의 연대공동체가 재춘을 지킨 것이다.

 
▲전선이 허물어지는 것은 자본의 탄압 때문이 아니다. 떠나는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를 재춘은 의리로 메꾼다.

  시간은 어떻게 노동자의 편이 되는가  

“내가 투쟁의 길에 들어선 것은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 하지만 내가 새로운 경험을 계속하는 것은 ... 황금기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쪽으로는 살얼음판을 걷고 한쪽으로는 좋은 경험을 하고, 이게 같이 가기 때문에 불안하면서도 좋은 거야.” ([재춘언니] 김경봉) 전망없는 싸움을 계속하게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재춘과 동료들이 투쟁을 하는 동안, 노동자였을 때는 생각할 수 없었던 전혀 낯선 경험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각색하여 [햄릿]과 카프카의 [법 앞에서]를 연극무대에 올리고 순회공연을 하고 [차라투스트라]를 읽기도 한다. 기타를 만들기만 했었지 연주하게 될 줄은 몰랐을 그들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밴드 [콜밴]을 결성하여 회사를 조롱하고 투쟁을 노래한다.

그리고 재춘은 [오마이뉴스]에 2년 동안(2013.12월~2015.5월) ‘임재춘의 농성일기’를 연재하고, 2016년에는 농성일기를 묶어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책으로 출판한다. 연극무대에 서거나 밴드활동을 하거나 농성일기를 쓰거나, 그들에게는 매번 새롭고 흥미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을 하는 동안에는 자본의 도구처럼 느끼고, 오히려 노동과정 바깥에서 자신을 살아있는 존재로 감각한다. 해고라는 자본과의 관계가 분리된 상태에서, 그들은 이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인생의 황금기’를 체험하게 된다. 니체는 춤과 웃음과 놀이는 가치를 전환시키는 신체의 긍정적 힘이라고 말한다. 천막 농성장에서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함께 놀면서, 결연한 싸움은 가벼워지고 무기력한 고통의 시간에 반짝이는 기쁨이 끼여든다. 결국 싸움은 그 자체로 긍정되고, 원한이나 자책이 아니라 새로운 무엇을 생성하는 힘을 갖게 된다.

대체로 장기간의 싸움에서 시간은 자본의 편이다. 자본은 노동자들이 지치기만을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기투쟁은 자본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이 된다. 시간은 어떻게 노동자의 편이 되는가?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력해지고 지치는 ‘시간에 복종’하는 것도, 결연한 의지로 견디고 버티면서 ‘시간과 대결’하는 것도 아닌, ‘시간과 친구’가 되는 것-흐르는 시간과 함께 흐르는 것이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시간에 새로운 흔적을 남기면서 시간과 함께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장기간의 싸움에서 ‘자본과 적대하기’보다 중요한 기술, 혹은 ‘자신을 연민하기’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시간과 친구되기’이다. “그거 하면서 그래도 행복했어. 남들한테 보인다는 게 쉬운 게 아니잖어. 내 성격 너무 잘 아는데. 남들 앞에 나오고 하는 거 진짜 싫거든. 내가 어떻게 보면 완전히 변했다고 할까.” ([재춘언니] 임재춘)

노동자들에게 폐업과 정리해고는 어느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재난이기 때문에, 아무런 대책없이 당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13년이라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연극도 하고 밴드도 하고 글쓰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극을 하고 밴드를 하고 글쓰기를 하는 동안, 그들은 연극배우ㆍ밴드연주자ㆍ작가가 된다. “우리 예술가 다 됐어요. 콜밴 만들어서 공연하고, 작년엔 우리 햄릿공연에서 ······.” ([재춘언니] 김경봉) 짧은 기간이었다면 결코 생각하지 않았을 것들, 싸움이 길어지면서 시도하게 된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다른 존재가 된다. 대체로 정리해고는 노동자를 패자로 만들고 때로 투사로 길러내지만, 드물게 예술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많은 경우 시간은 기록의 도구에 그치지만, 그들의 싸움에서 13년이라는 기--ㄴ 시간은 사건을 생성하는 행위자로 작동한다. 시간과 친구가 된다는 것, 시간을 내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정리해고는 대체로 노동자를 패자나 투사로 만들지만, 드물게 예술가로 길러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