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원자료 :: 인사원의 과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동종적 혈통의) 생산 양식이 아니라 (이종의 선발의) 포식 양식이고, [이 포식 양식이란] 공생적 포획과 존재론적 ‘재포식’에 의한 ‘재생산’이다. 즉 ‘자신’의 외부화를 위한 조건으로서의 타자를 식인 풍습에 따라 내부화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은 적대자에 의해 ‘자기 규정되는’ 자기 자신을 본다. 다시 말해, 적대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본다. 이런 것이 아마존의 우주적 실천에 내속되어 있는 타자-되기다.”(231)

 

“되기는 결연alliance과 관계된다. 만일 진화가 참된 생성들을 포함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가능한 계통filiation도 없이, 전혀 다른 생물계와 등급에 있는 존재자들을 이용하는 공생symbioses이라는 광활한 영역에서 이다.”(천고 p 453)

 

  이 책에서 ‘포식’이란 단어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공생’은 들뢰즈의 『천고』를 인용할 때 잠시 등장한다. 한데 『천고』에선 정확히 반대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공생’이고 ‘포식’ 혹은 ‘포식자’란 단어는 발견하기 어렵다. (1~2개?)

 

따라서

1) 저자는 공생의 형이상학? -공생의 초월론적 위상?-을 포식의 혹은 식인의 형이상학으로 대체하려 하는 게 아닌지 먼저 물어야 할 것 같다.

 

2) 그리고 저자는 포식을 형이상학의 초월론적 위상으로 설정하기 위해 몇 가지 ‘매개 장치’를 설정한 것 같다. ➀ 훔치기’의 이중 포획, ➁‘적대자’로서의 자기 자신, ➂희생 개념의 이중적 작동의 혼합(219) 등.. 그런데 이 매개가 다소 무리한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즉 ➀ 포틀라치나 쿨라는 식인과는 다른 맥락아닐까? ➁ 이종적 분리종합은 적대자의 종합은 아니라는 것, 이를테면 인간/재규어 다양체는 인간내 종족/적대자 다양체와는 다르지 않을까? 오히려 재규어/다른 적대적인 재규어 다양체와 유사한 것 같다. ➂ 『천고』에서 희생은 계열적 사고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것 같다. 즉 유비나 은유를 통한 상상적 결합말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왜 아마존 종족지학에서 ‘유독’ 희생이 포식 형이상학의 매개가 되는 지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존 종족지학에서 내부가 없다는 선언?은 가능한 선언일까? 어떻게 내부가 없을수가 있을까? 이미 저자는 투피남바쪽 내부의 3그룹을 그리고 있지 않는가? 

 

3) 포식의 형이상학과 식인의 형이상학을 혼용하고 있다. 하지만 둘 사이는 ‘말과 사물’만큼 다른 개념이 아닐까? 이를테면 사물이 내용이라 하고 말을 표현이라 한다면, 포식은 내용이고 식인은 표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식인과 희생제의는 다른 내용과 표현의 관계이고, 희생제의와 사제는 또 다른 배치를 요구한다. 각각 배치마다 고유한 단절들이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4) 식인를 이해하기 위해 배치를 고려한다는 것은 이해가능하다. 그런데 그것에 형이상학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은 마치 모든 동물은 질료적으로 ‘고기이다.’라고 선험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유사한 의미부여 아닐까? 선험적으로 고기이면 인류의 역사는 아마도 ‘요리책’이 될 것이다.

 

5) 식인의 형이상학이란 레비의 표현은 다소 문학적인 수사에 가깝지 않을까? 문학적인 수사란 그 단어의 개념적 의미보다는 그 단어의 정동적 느낌에 더 호소하는 것 같다. 이 책 역시 탈식민주의의를 고민하는 라틴아메리카 인류학자의 문학적 수사에서 자유롭지 못한게 아닐까?

 

6) 하지만 관점주의와 다자연주의 그리고 다양체, 샤먼과 주술의 ‘되기’의 관점에서 해석 등은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물론 우리의 배치에서 샤면과 주술은 다른 의미이겠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의 샤먼-되기 인가?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