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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힘에의 의지와 금욕주의

금욕과 금욕주의의 차이

ⓐ 금욕 : 어떠한 욕망을 억제하는 것으로 이는 의욕하지 않음으로 치환될 수 있다.

‘금욕(禁慾)’이라는 것 자체는 좋음이나 나쁨이 정해져 있지 않다. (279) 개인이 자신의 신체에서 주권적으로 신체를 통제하고 조율하여 자신을 약속 장소로 이끌거나 약속한 바를 이루게 만드는 것 또한 금욕이 될 것이다.

ⓑ 금욕주의 : 자연 내지 생명의 본성에 속하는 욕망 자체를 적대시하고, 그런 욕망에서 해방된 상태를 선한 세상이라고 이상화하는 태도로서 ‘무를 의욕함’이란 단어로 치환될 수 있다.

 

무관심한 시선으로 본 미의 세계, 나 자신의 감각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의심하고 내 인식능력이 들여다 보지 못하는 어둠인 내 신체 반대편에서 찾는 진리의 세계, 생존의 끔찍한 이기성에서 벗어난 이타적 도덕의 세계. (281)

니체가 제 3논문에서 금욕주의에 대해 별도의 장을 마련한 이유는 이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힘의 의지가 닿지 않는 지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체는 이러한 금욕주의적 이상은 힘의 의지로서 설명될 수 있을뿐더러 삶에 필요하고 유리한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힘의 의지의 형태인 ‘~을 의욕한다’의 목표를 ‘무(無)-욕망이 사라진 상태’로 내세우면서, ‘무를 의욕한다’라는 역설적인 문장을 완성시키게 된다.

 

철학자와 금욕주의

 

금욕주의는 철학자에게 필요한 존재이며, 더 나아가 철학이 가능한 이유가 이러한 철학자들의 금욕주의적 삶에 있다.

 

ⓐ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 무관심 이론

칸트와 쇼펜하우어는 엄밀히 말하면 분리가 되지만, 니체의 책에 있어서 스탕달과 대비되는 칸트의 위치는 쇼펜하우어로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무관심’ 이론은 칸트처럼 완전한 밖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관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삶, 생에 대한 관심으로 바꿔말할 수 있을 것이므로 금욕주의가 역설적으로 삶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니체는 지적한다.

ⓑ 보편적 영역에서의 금욕주의적 이상

금욕주의가 철학자들에게는 행복을 위한 것이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철학자들에게 ‘청빈, 겸손, 순결’과 같은 금욕주의 슬로건은 최선의 삶을 위해 그들이 택한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철학자들이 금욕주의적 이상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생명의 본성 그 자체에 충실한 세간의 의지를 피해 삶과 반하는 철학이 생존할 땅을 따로 얻기 위해 성직자의 금욕주의와 손을 잡은 것이다.”(301)

이는 금욕주의가 일으키는 경외(敬畏-sublime)라는 전략으로 존속된다. 이는 자신의 신체를 통제하고 주권적 개인이 되려는 끊임없는 싸움의 형식으로 일어난다. 보통 명상적 인간이라고 불리는 수행자들, 철학자들의 삶이 그러하다. 이런 삶을 사는 이들의 삶이 세간 혹은 거리의 사람들이 그러한 ‘퍼포먼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함과 동시

 

예술가, 예술과 금욕주의

1) 예술가와 금욕주의

“예술가에게 금욕주의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며, 그런 만큼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니체는 직접적으로는 언급하지는 않지만, 바그너의 경우를 예시로 들고 있는 듯하다.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 순결과 관능 사이의 긴장, 이 대립구조가 이끄는 서사. 그러나 순결과 관능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필수요소로, 결국에 하나임. 그리고 그것이 바로 ‘비극’이 되는 것이다.

ⓑ「파르지팔」 - 관능의 패배와 순수의 승리

→ 바그너의 예술의 금욕주의 숭배로 만들어낸 ‘해피엔딩’으로 니체는 이를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함.

 

예술가들은 철학자들과 달리 그러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금욕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예술을 철학으로 그것을 승화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예술작품이 지니는 자유를 망각한 행동에 불과하며, 결과적으로 상상력을 세간에 묶어놓는 재현의 양식의 예술작품을 만들게 된다. 즉, 이는 불완전한 욕망이 다름이 아니다.

 

2) 예술과 금욕주의

철학자의 삶과 철학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에 타당한 것을 철학은 요구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철학에서 가지는 위치를 생각해보자) 삶과 떨어진 철학을 말할 때, 철학이 얼마나 위험해지고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예술가는 예술의 삶과 분리될 수 있을 자유가 있다. 철학자들과는 반대로 그들이 금욕주의에 얽메이게 될 때─여기서 금욕주의가 삶에 대한 ‘~해야만 한다’로서 해석된다면, 작은 의미의 삶밖에는 포착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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