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_웹진강의 :: 웹진으로 하는 강의, 인터넷강의입니다!


이 인터뷰는 2016년에 캠브릿지 대학의 사라 프랭클린이 진행했다. 프랭클린은 해러웨이의 오랜 독자이자 팬이다. 2016년에는 다나 해러웨이의 새 책들인, “Manifestly Haraway(Minnesota,2016)”와 “Staying with the Trouble: Making Kin in the Chthulucene(Duke, 2016)”이 출간되었는데, 이 인터뷰는 “Staying with ~”의 출간 직전에 이루어졌다. 사라 프랭클린은 이 인터뷰를 통해서 해러웨이 작업의 몇 가지 핵심적인 주제와 핵심 용어들, 그리고 그녀의 글쓰기 실천들을 탐색하고 있다. 

                                                                다나-사라.png

 

선언과 함께하기: Donna Haraway 인터뷰  (Staying with the  Manifesto: An interview with Donna Haraway)- 마지막편

Sarah Franklin (University of Cambridge)
Theory, Culture & Society 0(0) 1–15 

 

번역: 최유미

 

- 인터뷰 1편 보기

- 인터뷰 2편 보기

 

 

 

프랭클린: 예, 물론이지요, 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노예 정원이 ‘재생산(생식,reproduction)’이란 말을 생각나게 하네요. 내가 알기로, 당신의 작업에서, ‘재생산(생식)’의 의미는 때때로, 일종의, 옛날 것과 같은...

해러웨이: 동일한 것의 재생산이죠.

프랭클린: 예, 동일한 것의 폭압이죠. ‘공생적이고, 수평적인 유전자 이동을 하자- 그것은 생식(재생산)보다 훨씬 흥미롭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층위에서는, 재생산(생식)이 당신 작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죠. 내러티브와 메타내러티브 모두에서- 에덴동산의 신화와 그 모든 것. 그리고 노동의 관점에서 특히, 재생산이 생산에 앞서고 생산에 근본적이라는 일종의 구식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관념에서 말입니다. 당신 작업의 많은 부분이 재생산의 정치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런 저런 형식으로, 심지어 퇴비조차도 말입니다. 그 용어에 관해서 당신의 생각을 조금 이야기 해 주시지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해러웨이: 나는 ‘생산(production)’이라는 용어 없이는 ‘재생산(reproduction)’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재생산과 생산은 함께 갑니다. 그것이 상기시키는 것은 역사적으로-상황에 처해진 일단의 실천들, 세계화하는 실천들, 그리고 세계 만들기 실천들입니다. 이런 실천들은 필연적으로, 신체의 생물학적인 과정들을 포함하고, 특히 생명을 만든다는 것과 포괄적 의미에서 여자들의 생식 노동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특히, 생명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그것들의 도약과 그 자신들의 생명을 가질 가능성으로 생명을 데려 온다는 그 전체적이고 포괄적 의미에서, 여자들의 생식 노동을 포함합니다. 어린이들을 성숙한 성인기로 데려오는 것은 ‘재생산’의 의미들 중 하나죠. 주거와 이동의 자유, 그리고 삶을 가능하게 하는 즐거움의 조건들과 같은 일들의 중요성 말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재생산에 그리고 생산에 포함됩니다. 노동들, …하는 노동, 그건 일종의 만들기에 있어서의 생성적인 표현이죠. 물론 생산과 재생산은, 특히, 서양이라고 불리는 것의 카테고리들입니다. 메릴린 스트라선(Marilyn Strathern)과 당신은 저에게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생산과 재생산이 유럽적인 카테고리라고 하는 많은 방식들을 발굴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것은 모욕이 아닙니다[Strathern, 1980; Franklin, in press]. 유럽적인 카테고리라는 것이 생산과 재생산을 나쁘게 혹은 소용없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산과 재생산에 위치를 부여합니다. 그것들은 주로 식민주의를 통해서, 자본주의와 그 기구들을 통해서, 전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당신과 메릴린이 모두 주장한 것처럼, 잘못 일반화된거죠.

 

 

                                                    gender.jpg메릴린.jpg

 

 

그래서 메릴린(Marilyn)이 ‘선물인 성 The Gender of the Gift[1988]’ 과 다른 곳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작업한 (사회적인) 사람들 만들기(the making persons)…… 그녀와 동료들은 – 특히 멜라네시아에서 작업했는데 – 정말 우리를 위해서, 모든 종류의 세계 만들기와 개념체계들을 전경화 했고 그리고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실제 실천들뿐만 아니라, 개념적 도구를 포함해서, 사람들 만들기(the making of persons), 그리고 분할 가능한것(dividual)들과 분할 불가능한것(individual, 개체)들의 차이에 관해서 말입니다. 분할 불가능한 것들은 생식에 의해 생산됩니다. 분할 가능한 것들은 실체 만들기 문제들(substance-making matters)에 있어서 다른 종류의 물질 교환들을 통해서 생산됩니다. 그 모든 것이, 이 세계에서 성인 즉, 이 세계에서 성인 페미니스트가 되는데 근본적인 거라고 느껴집니다.

그 다음, 현재 이 지구 상에 74억의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에 관해서 느끼는 정말, 내 뼛속 깊은 분노와, 공포와, 두려움과, 불행. 그리고 만약 우리가 엄청나게 운이 좋다면, 세기 말에는, 우리 – 종, 인간 – 잘 모르겠어요, 누가 ‘우리’이든 간에, 인구가 족히 110억명은 될 것 같습니다 – 만약 우리가 운이 좋다면 말입니다. 만약 광범위한 세계 전쟁이 있다면, 그것만이 인구수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재앙이 고난의 원동력이긴 해도, 궁극적으로 인구를 격감시키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정반대입니다, 실제로, 이건 또 다른 공포입니다. 그래서 나는 왜 페미니스트들에게 인구문제가 바로 건드리면 안 되는 건지를 알아요. 여성혐오주의, 우생학, 제국주의, 인종주의, 강제적 불임화, 등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실제로 하나의 카테고리로서, 인구의 역사에 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나는 Alisoon Bashford의 책, Global Populaton[2014]을 읽고 있는데, 그녀는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어쨌든, 이 모든 토론은 나로 하여금 인구라는 카테고리를 놓아 주도록 하지 않는군요. 왜냐하면, 나는, 인구라는 카테고리가 아무리 문제적일지라도, 우리가 작업하기 위해선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Bashford의 연구는 정말 깊이가 있습니다. 그녀는, 멜서스주의적인 기구인 인구 기구들의 과중하고, 막대하고, 접혀져 있고 층위를 이룬 퇴적들을 발굴하고, 그들과 동맹하지 않고 비판 합니다. 그것이 말하는 바, 70억 이상이라는 숫자는 단지 추상적 숫자가 아닙니다. 실제로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 페미니스트로서, 다시, 페미니스트라는 것 이상으로, 정말 진정으로 이 지구상에 족히 70억 이상 되는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얼마나 분산되어 있는지, 얼마나 정당한지, 얼마나 반 제국주의적인지는 나는 상관없습니다만, 우리는 이 모든 것에 관여하려고 노력하죠. 이것은 정말 막대한 문제이고,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우리 시대를 특징 짓는 것과 지난 몇 십 년과 다가올 몇 십 년이 이르게 되는 것, 그것은 단지 인간들의 웰빙에 이르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말 멸종의 위기이자 파괴의 위기입니다. 그것은 생태학적 소멸에 관한 것입니다. 이건 지구를 단지 인간이 살고 성장하도록 유지하기 위한 자원으로만 만들어버려서 야기되는 것이죠. 그리고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이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건 좋지 않습니다. 분명히, 대화는, 그것의 잘못된 역사들과, 아무튼, 부유한 지역의 가진 자(그러나 그들뿐만 아니라)에 의해 만들어진 차별적인 유린에 계속 맞춰져야 합니다.

 

프랭클린: 예, 좋지 않지요. 그리고 당신이 말씀하는 것처럼, 인구에 관해서, 그리고 이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다르게 이야기할 여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동의하는데, 현재로서는, 그것을 위한 여지가 실제로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이야기할 매우 적절한 초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야기 할 것들을 말하자면, 저는, 당신 마음속에서 대기 중이거나, 이미 씨가 뿌려져 있거나, 아니면 이미 태어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는 쑬루언 선언(Chthulian manisfesto)에 더해서, 또 하나가 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건 더 일찍 나올 수 도 있겠지요, ‘아기가 아니라 친족을 만들자(Make Kin Not Babies)’ ‘아기가 아니라 친족 만들자(Make Kin Not Babies)’ 선언이 곧 나올까요?

해러웨이: 글쎄요, 아주 이른 시일에 짧고, 날카롭고, 도발적인 글이 쓰여지겠지요.

 

 

                                                make kin.jpg

 

 

프랭클린: 좋습니다. 그렇다면 등장이 임박했군요.

해러웨이: 예, 왜냐하면, 아델 클라크(Adele Clarke)와 내가 지난 11월(2015) 4S에서 ‘Make Kin Not Babies’라는 패널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6명의 사상가들,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이 함께 합니다 – Alondra Nelson, Kim TallBear, Chia-Ling Wu, Michelle Murphy, 나 그리고 Adele Clarke. 모든 것에 관해서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Michelle Murphy와 나는 인구 카테고리에 걸쳐서 생식력에 관해 마찰이 있는데, 그녀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을 위해서 이것은 더 이상 사용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 그렇지만, 우리는 ‘Make Kin Not Babies’라는 표어 아래 관심사들을 공유합니다. 특히 친족 만들기 부분, 족보상으로가 아닌 친족 만들기. 어쨌든 족보 관계가 나빠져야 된다거나, 족보를 통한 여러 가지 관계에서 가족이 내던져져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 족보의 전체 역사에서 당신은 나의 큰 스승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르게 친족 만들기, 옛날 방식과 새로운 방식 모두로 친족 만들기입니다. 긴 시간과 짧은 시간에 걸쳐서, 견뎌 내고, 세대를 교차하는 친족 만들기입니다. 다르게 친족 만들기죠. 아기들이 아니라, 향후 몇 백 년에 걸쳐서, 인간의 숫자를 줄이는 근본적으로 줄이는 일의 한 부분으로서 말입니다. 하지만, 환경정의는, 근본적인 인구 감소에 있어서 환경정의는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기가 아닌, 친족 만들기의 수단으로서, 인간에 있어서의 인종, 계급, 종교의 이슈들을 포함하여, 복수종(multi-species)의 번영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것이 나의 정치적인 사변적인 우화(speculative fabulation, SF)입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적인 사변적 우화는 역사가 깊지요. 페미니스트 양식에서의 사변적 우화는 강력합니다. 페미니스트 SF는 원기왕성하게 그리고 창의적으로, 아기 만들기가 아닌 친족 만들기에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아기 만들기는, 진귀하고 값진 것들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바람직한 유년시절을 보낼 가능성이 모든 아기들에게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것은 오늘날 중요성을 갖지 못합니다. 나는 실제로 엄청나게 어린이 친화적이에요. 그리고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진지하게 활기찬 공동체를 구성해서 어린이 친화적이 되고 잘 자리기에 친화적(pro-growing up well)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을 선도해 왔습니다. 우린 리더들이었지요. 그리고 내 생각에, 아기가 아닌 친족 만들기 프로젝트에서는, 우리들 사이에서 이주 관련 이슈들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아기들이 있습니다. 우생학적 국가주의자들은 제대로 된 아기들이라고 생각지 않지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싱가포르, 타이완, 덴마크, 등등에서 우생학적 국가주의자의 국가주의 지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랭클린: 예 사실이지요. 그 질문들은 미래에 당신의 쑬리안(Chthulian) 선언과 결합될 것이고, 그래서 아마도 그렇게 되면 함께 뭔가 흥미로운 자식을 생산하게 되겠지요.

해러웨이: 누가 알겠어요? 나는 이제 늙은 여자이고, 그렇게 하지 않을래요. 더 이상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아요.

 

 

                                                                   왕나비.jpg

 

프랭클린: 다나, 부디 그렇게 할 수 있게 되길 빌께요! 그래서, 다나,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나 할까 합니다. 나는 당신이 말씀하신 그 많은 것들에 대한 관찰로 시작하고 싶은데요. 당신은 윤리적 민감성에 관해서, 노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관해서, 그리고 새롭고, 때때로, 깨지기 쉽고 어려운 종류의 인척관계(친화성)를 만들 필요에 관해서 말입니다. 그건 아마 제대로 실패하겠지만 말이에요. 이것은 모두, 당신이 당신의 글에서 인용하는 층위에서 아주 명백해요. 왜냐하면 두 선언 모두, 그리고 ‘Manifestly Haraway’ 에서의 당신의 인터뷰에서 눈길을 끄는 것 하나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학자들에게 당신이 기울이고 있는 관심과 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특이한 것이었어요.

글쓰기와 학문에 관한 그런 종류의 책임과 주의에 관련해서 당신의 작업과 정치학을 알리는 방법에 관해서 조금 말해 주시겠습니까? 다른 질문들과 그것이 어떻게 관련되는지..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당신이 선언한 것들 중 하나는 일종의 관용인 것 같습니다. 접근하여 손을 뻗고,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을 듣고, 당신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들과 관계 맺는 일들....

해러웨이: 그 말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하네요…. 당신이 하신 말은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그런 일들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제 생각에 전, 퍼스낼리티도 강하고, 나(I)라는 것도 아주 강한 사람입니다. 나는, 나로 하여금 더욱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방식들을 예민하게 알고 있어요. 또한, 나(I)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we)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나(I)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기쁨을 주는 계속되는 실천인지 말입니다. 그 기쁨은 우정과, 정치적 친화성과, 가족, 그리고 동료관계들의 계속되는 성질 속에 있고 그런 것들은 생기를 주는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인용에 신중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나에게는 내가 살펴보는 몇몇 사소한 프로토콜들이 있습니다. 내가 글쓰기를 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중대한 무엇을 누락하지 않았는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이거나 적어도, 독자나 청중에게, 어떤 작업이 얼마만큼 공동 작업인지를 분명히 하려고 하는 것이죠. 나는 그것에 많이 신경 습니다. 그리고 확실하려고 여러 축으로 이 프로토콜 작업들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실수해서,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내 그림을 사용했지만, 나는 내 이름을 듣지는 못했습니다’라고 써서 보낸다면, 엄청 당황하게 되겠지요. 전 그건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

 

프랭클린: 프로토콜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일종의 종합적인 검색을 의미합니까? 아니면 이 프로토콜이란 뭔가요?

해러웨이: 그렇게 체계적인 것은 아니고, 조그만 리스트가 있습니다. 내개 혹시 백인만 인용했는지, 토착민들을 지워 버렸는지, 인간이 아닌 존재자들을 잊어버렸는지, 등을 주목합니다. 일부러 주목하죠. 최소한의 주의도 기울이지 않은 건 아닌지 주목합니다. …약간 구식이면서 서투른 카테고리들, 인종, 성, 계급, 종교, 섹슈얼리티, 젠더, , 종들에 주의를 기울이죠. 나는 이 모든 카테고리들이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알지만, 이들 카테고리들은 여전히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일종의 경고시스템, 내면화된 경고 체계를 개발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인용도구를 통해서 ‘곤란함과 함께하기 Staying with the Trouble’를 을 살펴보았을 때,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많은 토착민들의 영유권 분쟁들에 의해 나는 정말 많이 고쳐졌지만, 실제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일들에 관해서 내가 너무나 침묵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환경정의를 둘러 싼 연대들의 질문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그래서 나는 하려고 애를 썼죠. … 있잖아요, 그것을 바로 잡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것을 인용하는 것은 가능했죠. 인용을 통해 이 책이 충분히 만족스럽게 그 일을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충분히 잘 인용하는 거죠. 그래서 나는 인용 도구 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를 지적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이 바로 가리키고는 있지만, 실제로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프랭클린: 예, 자, 다나, 당신이 책으로 엮은 두 가지 훌륭한 선언들과, 벌써 기대됩니다만, 곧 나올 두 가지 선언들을 설명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인터뷰를 마쳐야 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8 [해석과 사건9] [보론 1] 들뢰즈에게 ‘플라톤주의의 전복’이란 무엇인가? file nomadia 2018.02.06 1168
127 번역 :: [칸트의 경험의 형이상학] 번역 _ 3회 file 김민우 2018.01.20 1595
126 [번역-동물권리선언] 동물과 비장애인중심주의 file 큰콩쥐 2018.01.12 779
125 [해러웨이] 반려종과 실뜨기 하기(2) file compost 2018.01.03 943
124 [해러웨이] 반려종과 실뜨기하기(1) file compost 2017.12.31 1231
123 [헤러웨이] 선언의 사상가 다나 해러웨이 file admin 2017.12.25 2986
122 번역 :: [칸트의 경험의 형이상학] 번역 _ 2회 file 김민우 2017.12.05 694
121 번역 :: 게으름과 근면의 관계를 스스로 분배하는 노동을 위해 file Edie 2017.11.20 659
120 [해석과 사건8] 데카르트와 프루스트-삼중의 질서와 타자의 왜상 file nomadia 2017.11.08 3123
119 번역 :: [칸트의 경험의 형이상학] 번역 _ 1회 김민우 2017.11.02 1293
» [헤러웨이] 선언과 함께하기-다나해러웨이 인터뷰(마지막 편) file compost 2017.10.28 750
117 [헤러웨이] 선언과 함께하기-다나해러웨이 인터뷰(2편) file compost 2017.10.20 1439
116 [헤러웨이] 선언과 함께하기(1)-다나해러웨이 인터뷰 [4] file compost 2017.10.10 4158
115 번역 :: ‘일본인 위안부’ 담론에 대한 내재적 비판의 시도 [2] file Edie 2017.09.19 990
114 [해석과 사건7] 주체와 타자-코기토의 전복 [1] file nomadia 2017.09.05 5600
113 번역 :: 폭동과 학살의 남성성(후지노 유코, <도시와 폭동의 민중사 – 도쿄 1905-1923>) [1] file Edie 2017.06.18 695
112 번역 :: [가게모토 츠요시] 한국전쟁 시대의 "공작자"들의 문화=정치 수유너머웹진 2016.12.23 42
111 [해석과 사건6] "홀림"-목적론과 결정론 수유너머웹진 2016.12.04 232
110 [칼 슈미트 입문강의] 7강 첫번째 부분 수유너머웹진 2016.11.23 389
109 [해석과 사건5]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우구스티누스 [1] 수유너머웹진 2016.11.20 572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