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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몸 그릇 춤”

 

“박정은은 공간을 탐구하는 설치 무용 퍼포먼스 작가입니다. 몸이라는개인의 공간을 탐험하여 몸에 담긴 흔적들을 만납니다. 나의 내부이며 세계가 들어 온 외부이기도 한 몸. 몸이 느끼고 만지고 냄새맡으며 사물에 깃든 몸의 흔적들. 몸에 깃든 사물의 촉감. 느낌. 냄새.몸은 사물 그 사이에서 공간을 만듭니다.”

                                                       - 작가 포트폴리오에서

 

틈. 서성이다. 있다 ■ 작가는 수유너머104의 공간에서 세 번의 퍼포먼스, 한 번의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작가의 설치물은 조금씩 달라졌다. 전시 첫날은 커다란 플라타너스 낙엽 한 잎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신생아 손바닥만 한 노란 은행잎도 옆에 매달려있었다. 며칠 후 잎은 주방과 강의실로 가는 길목, 어쩌면 수유너머 104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매달려 있었다. 다시 며칠 후 잎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초입에 있었다. 매달린 잎 밑에는 연구실 현관에 있던 화분이 있어서 돌아 다녀야 했다. 그리고1층 구석에 설치되어 있던 흰 커튼은 세 번째 퍼포먼스 전 철거되었다. 한편, 첫 번째 퍼포먼스는 관객이 많았다. 퍼포먼스를 하기 전 작가는 미리 준비해 온 진흙을 나누어 주었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형상이 만들어졌다. 작가도 커튼 뒤에서 흙을 벽면에 붙였다. 퍼포먼스가 끝났을 때는 모든 흙이 어느 정도 굳어 있었다. 작품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두 번째 퍼포먼스는 작가가 가져온 스티로폼 상자 몇 개와 낡은 풍선이 커튼 밖으로 나오면서 시작하였다. 지난번 퍼포먼스에서 작가가 벽에 붙였던 흙은 떼어 낸 흔적만 보였다. 사람들이 만든 흙덩이도 커튼 밖으로 옮겼다. 어설프게 쌓은 스티로폼 상자 위에 두었다. 작가는 커튼 밑으로 기어 나와 바닥에 엎드린 채 움직였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사람들은 보기만 했다. 사진을 찍기도 했다. 흙덩이를 다시 커튼 뒤로 옮겼다. 잠시 후 커튼을 젖히고 나와서 풍선을 터뜨리고 낙엽을 밟았다. 손바닥으로 남김없이 쓸어 상자에 담았다. 상자를 메고 문을 열고 나갔다. 퍼포먼스가 끝났을 때 작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전시 마지막 날은 세 번째 퍼포먼스가 있었다. 검은 옷을 위아래 입었던 이전 퍼포먼스와는 달리 여름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흰 커튼을 포함한 모든 설치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구석에서 시작한 움직임이 몸을 좌우로, 앞뒤로 휘게 했다. 점점 벽에서 멀어지고 앞으로 나왔다. 똑바로 섰다. 희미하게 웃는 것 같았다.

한 달여 동안 작가는 수유너머 104 회원들과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놀러 온다. 나는 퍼포먼스를 보고 두 편의 시를 썼다.

     

두 번째 퍼포먼스 _ 박정은

 

아이는 검은 옷을 입고 왔다. 빗속에 세워 둔 풍경처럼 서성거렸다. 흰 커튼 뒤에 있다. 선생들은 흙을 굴리느라 바빴다. 네모는 세우고. 머리는 뭉치고. 그릇은 깊게 눌렀다. 굳어가는 동안 으르렁거렸다. 비대해졌다. 아이는 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성거렸다. 서성거린다. 아이가 매달아 둔 낙엽이 흔들린다. 커튼 뒤에 있다. 서서히 보인다. 스티로폼 상자와 고무풍선. 하나씩 커튼 밖으로 나온다. 사람보다 가벼운 물건. 상자는 상자 위에 상자. 비틀거리는 상자 위에 선생들의 작품이 있다. 플래시가 터진다. 선생들의 목이 길어진다. 플래시가 터진다. 젖은 호흡. 포복한다. 책상 밑을 다리 사이를 쓸고 지운다. 형광등이 깜박 거린다. 선생들은 불어난 침을 삼킨다. 결코 넘어서지 않는다. 움켜쥐며 돌아온다. 커튼 뒤에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 빗소리가 들린다. 질질 끄는 발소리가 떠내려간다. 커튼이 떨린다. 일제히 쏟아진다. 후들후들 일어난다. 상자 위 흙덩이를 커튼 뒤로 옮기기 시작한다. 시신을 다루는 늙은이의 손처럼. 선생의 목이 빠지게. 눈이 빠지게. 풍선이 깨진다.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낙엽이 깨진다. 산산조각으로 서 있다. 빙빙 돌며 짓이기고. 붉게 미끄러진다. 맑게 미끄러진다. 쓸어 담는다. 쓸어 담는다. 스티로폼 상자. 메고 나간다. 빗소리가 보인다. 흙냄새가 난다. 커튼 뒤에 있다. 흰빛이 태연하다.

 

세 번째 퍼포먼스

 

퍼포머는 여름옷을 입고 인사한다        

더운 공기가 커튼을

걷는다

벽이 만나는 모서리

흰빛이 시작한다

등이 펴지고

다리가 뻗어

휘거나 굽은 것은 잘리고 혈관을 서너 바퀴

곧은 것만

솟아

천장을

뚫고

검은 하늘을 낚아채어 도심을 강을 퍼드덕 횡단하다                

바다

는 무취하여

 

시간의 크레바스 위

                               

                                                     윙

 

    

              윙

 

 

작가는 스스로 드러난다. 스스로 의심하고 탈주하고 해체하며 스스로 새로운 스스로를 만나는 것이 작업이 된다. ■ 이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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