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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와 현상학의 해체] 7월 26일 너무 늦은 후기 올립니다.

지난 주 아이가 어린이집 방학을 맞아,,,,,,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서 후기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간단히나마 올리겠습니다.

7월 26일에는 “목소리와 현상”의 제 6장 [침묵을 지키는 목소리]와 7장 [근원보충]을 읽었습니다.

 

6장에서는 앞장에 이어 언어의 상호주관성에 대한 믿음과, 그것에 의해 형성된 이념적 대상의 수반현전과 대립된, 독백과 직접적 자기 현전이 로고스중심주의와 갖는 상관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독백의 자기동일성이 시간성에 의해 해체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침묵을 지키는 목소리”는 혼잣말하는 “고혼의 생”의 목소리, 이중적으로 환원된 초월적 자아의 순수한 목소리를 말합니다. 이 목소리는 발신도 수신도 하지 않으며, 무얼 지시하지도 않습니다. 의사소통이 없으므로 ‘표시’가 없고, 기표와 기의가 붙어있고 우회 없는 직접 현전이기에 비생산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직설법 현재로서 이 세계 안의 이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념은 동일성을 가지며 무한반복할 수 있는 대상이고 지시에 현전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세계를 거칠 필요가 없고 공간에서 해방되는 목소리와 공모됩니다. 다시 말해 이념성이란 비경험적 의식에 의해 존재하기에, 마찬가지로 세계성의 형식을 띠지 않는 현상성을 지닌 목소리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기표적 실체에 비해 목소리가 우월한 이유도 표현에 의해 대상이 직접 현전할 때 목소리의 신체, 외면성이 말소되고 대상과 목소리가 통일되면서 ‘내가 나를 듣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자기 촉발로서의 목소리는 세계 내의 특정한 개입 없이 이루어지므로 기표를 무제한적으로 구사하는 지배 혹은 힘의 현상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촉발, 내가 나를 듣는 과정은 시간을 통해 그 동일성을 반박당합니다. 환원 자체가 시간의 과정이며, 나와 같지만 또 다른 초월적 나를 만나는 차이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말도 생각도 모두 시간의 힘을 빌리기 마련이며 자기가 말하는 것을 듣는 것도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차이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 차이는 시간에서 비롯됩니다.

초월적 자아의 독백이란 내면에서 벌어지는, 환원 불가능한 열림의 무대입니다. 이러한 한계는 근원적으로 보충을 필요로 합니다.

 

7장에서는 목소리를 사후적으로 재구성하면서, 근원에 대한 보충 뿐 아니라 순수한 근원에 대한 가정까지 가능하게 해주는 문자의 기능에 대해 설명합니다.

차연은 현전의 기의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된 현전과 다른 관계를 유지하는 다른 부류의 기표를 대리하는데, 이 다른 기표는 차이의 놀이에 의해 더 높이 평가됩니다. 기표가 이념적이면 이념적일수록 기표에 보충되는 의미는 사후적으로 더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체험이 지속적으로 추가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때 표현은 표지로서 기능합니다.

 

또한 대상의 충만한 현전이 없이도 문법의 규칙들만 준수한다면 말뜻은 전달 가능합니다. 저자의 자기 현전이 언표에 수반되는지의 여부는 말뜻의 기능 수행에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후설은 기술된 표현을 물리적 현상과 직관적 충만이 부여되는 대상적 작용으로 분리시키는데, 대상적인 것은 재활성화시 동반되는 직관에 의해 현전하여 나타나거나, 적어도 상상 속에서 재현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저자의 자기 현전이 없어도 말뜻은 지향성을 가지며, 오히려 직관 주체의 부재가 말뜻의 구조에 의해 요구되기도 합니다. 인칭대명사가 그러한 경우로, 이 표현들은 직관 주체의 경험적 현전을 다 담을 수 없기에 실제 담화에서는 표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존재해보지 않은 상태를 경험해야 완전히 가능한 말이기 때문에, 애초에 자기 현전을 담지할 수 없는 표지일 뿐입니다. 현전의 부재를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말이지요.

 

그러나 이와 같이 나 자신이 부재할 때 이해될 수 있는 경우의 결핍된 담화가, 사후적으로 보충되어 철학적 전통의 일부가 됩니다. 이처럼 언표 주체의 소멸을 전제로 하는 말의 가능성은 오히려 다른 말뜻을 탄생시키며, 그것을 듣고 읽을 수 있게 해 줍니다. 표시가 표현을 지령한다는 것입니다.

동일화되고 반복되는 목소리의 순수함, 초월적 자아의 자기현전, 독백의 자기동일성은 그것이 이념성으로 기능하기에 현재의 끼어듬을 무한정으로 미룬다는 한계를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리다는 현상학이 결국 형이상학적이라고 말합니다. 근원적 현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이를 통해 현전을 탈현전시킴으로써 그것을 살아있는 현재에서 재현시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있는 미술관의 예처럼, 재현은 근원적인 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상상하고 가정할 수 있게 합니다.

 

-제가 강의를 들으면서 학문간 융합이라는 개인 연구에 활용할 방안에 너무 골몰해 있다보니 마지막에 선생님께도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가 라이프니츠적 진리를 해체하는 방법과 현상학이 일의적 진리를 넘어서는 과정과의 방법론적 유기성에 대해서 질문했는데...주변적인 질문에도 잘 답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노마디즘을 참고하라고 하셨는데...아직 못 읽었네요.ㅠ

구성원 선생님들께서 발제도 후기도 너무 잘해주셔서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후기 늦게 올린 것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 자주 지각한 것도 사과드립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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