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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푸코 강좌! 강사 인터뷰

만세 2010.04.13 00:13 조회 수 : 5494

문: 반갑다. 이번에 강좌한다고 해서, 간단히 인터뷰 나왔다.

 

답: 음 그런가? 내가 좀 바쁜데...쌀도 씻어야 하고.

 

문: 알겠다. 나도 바쁘다. 그냥 하지 말자.

 

답: 농담이다. 왜 그리 성질이 급하나. 어서 물어봐라.

 

문: 농담 빼고 간단히 하자. 일단 소개부터 해봐라.

 

답: 이름은 조원광. 주로 만세라고 부른다. 외모는 장동건과 유사하며..

 

문: 드르륵(일어나는 소리)

 

답: 알겠다. 다시 농담하면 내 혀를 뽑아서 순대를 만든다. 제발 그냥 앉아있어라ㅜ.ㅜ 연구실에서 주로 맑스와 푸코 등을 공부했다. 그 사람들 논의를 빌어서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글을 쓰곤 했다. 대중운동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설명하면서도 촉발할 수 있는 수단을 얻고 싶어서 이 사람 저 사람 공부하는 중이다. 이번 강좌 역시 신자유주의 시대와 그것에 효과적으로 개기는 방법을 푸코의 시선을 통해 알아보려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문: 그런 목적이라면 여러 사람들이 있을 텐데 왜 하필 푸코인가?

 

답: 어떤 이론이든 잘 활용하면 삶을 돌보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푸코는  이론으로 삶을 바꾸겠다는 의도를 아주 직접적으로 표현한, 그것도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평생 이런 저런 문제제기와 함께 실제로 많은 운동을 조직하면서 살았다. 튀니지에서 학생운동 도와주다 경찰한테 얻어맞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활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고, 재미있다.

 

문: 운동권 교수였다는 말인가?

 

답: 아니 그렇게 단순히 설명하기 힘들다. 뭐랄까, 푸코가 내 뱉는 말들은 운동권이나 좌파의 틀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푸코가 한창 활동하던 1970년대 중반 쯤, 프랑스에서 성폭행과 관련해 더 엄격한 법안을 입안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 같으면, 또 여러 다른 사람이라면 좋은 일이라고 반겼겠지. 프랑스에서도 그랬던 것 같고. 근데 푸코는 이렇게 물었다. “그냥 폭행이랑 성폭행이랑 어떻게 다른가? 얼굴을 쥐어 패는 거랑 성폭행이 본질적으로 다른가? 다른 법이 필요한가?”
 많은 사람이 당황했던 것 같다. 다르다고는 해야겠는데, 그렇게 말하려면 ‘성’이란 영역이 정체성이나 삶에서 매우 특수하고 본질적인 영역이라고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푸코는 성을 그처럼 특수하고 정체성에 본질적인 영역으로 삼는 것 자체가 근대 권력의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봤다. [성의 역사] 라는 저작이 이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이런 입법과정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닐지 모른다고 넌지시 던진 셈이다. 뭐랄까, 그게 성에 대한 ‘규범화’(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자신이 비정상인지 정상인지 끊임없이 묻게 하는 과정)를 더욱 촉진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 무슨 말인지는 대강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답: 푸코는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답을 몰랐을 수도 있지만, 일단 답을 제시하는 걸 싫어했던 것 같다. 지식인이 답을 제시하기 시작하면, 그건 또 다른 도그마를 만들어낸다고 봤다. 대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을 들쑤셔 놓고, 사람들의 사고를 촉발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문: 무책임한 거 아닌가?

 

답: 답을 제시를 해버리는 게 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푸코가 성폭행 관련 법안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고 치자. 문제의식은 이해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상황들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게 역사의 과정이건 권력의 기술이건, 성이 실제로 특별한 영역으로 기능하고 있는데, 다른 장치는 다 놔둔 채 그 법적 규제를 해체할 수는 없다. 그건 더 많은 문제를 낳을 수 있으니까. 진짜 필요한 건 답이 아니다. 사태의 여러 영역을 고려하면서 각자의 삶에서 나름의 답을 내놓는 능동성이다. 푸코의 장점은 이런 들쑤심을 통해 사람들을 억지로 능동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답은 주지 않지만, 스스로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못견디게 만든다고 할까? 그래서 오히려 더 생명력이 있는 것 같고.

 

문: 짧게 끝내려 했는데, 너무 길어졌다. 핵심으로 들어가자. 왜 신자유주의를 푸코로 보겠다는 건가? 푸코가 보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이 뭔가?

 

답: 통상 신자유주의를 1970년대 즈음 생산영역 혹은 경제영역에서 일어난 특별한 변화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금융중심경제나 유연화 된 생산체제 같은 용어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푸코는 조금 다르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힘으로 파악한다. 즉 푸코에게 신자유주의는 ‘합리성’ 혹은 ‘전략’의 일종이다. 이런 합리성 혹은 권력의 전략이 신자유주의로 교체된 결과 ‘인간형’ 자체가 달라진다. 신자유주의적 인간형이 출현하는 것이다. 푸코의 신자유주의 설명에서 그것이 인간 간 관계를 어떻게 바꾸어놓고, 과거와 어떻게 다른 주체가 등장했는지 서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문: 전에 없던 분석 영역을 도입했다는 말인가?

 

답: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축의 연구 방법을 찾은 것이다. ‘합리성’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에 접근한다는 것이 경제를 보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합리성은 경제의 영역마저 관통한다. 푸코의 신자유주의론은 과거에는 간과된 영역(예를 들어 주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영역을 관통하는 합리성의 변환이라는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를 바라보는 것이다. 금융화이건 유연화이건, 그런 발상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다른 합리성이 필요하다. 그런 합리성의 변화가 경제의 영역에서는 다른 생산체제를 만들 것이고, 교육의 영역에서는 다른 주체를 길러낼 것이다. 아마 여러 학문이나 지식의 출현, 그리고 기존 합리성의 실패가 이런 변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문: 잘 못 알아듣겠다. --;; 여튼, 그렇다 치고, 그래서 우리가 얻는게 뭔가? 그냥 신자유주의가 나쁘다는 설명이나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는거 아닌가?

 

답: 물론 나쁜 이유가 하나 추가되는 것도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푸코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가 싸워야하는 대상을 좀 더 가까이 가져다주는 것이다. 기존의 신자유주의 논의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그것도 나름의 관점에서 진실이다. 하지만 그것에 저항할 생각을 하면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다. 지금 일어나는 사태가 금융중심경제로의 전환 때문이라면, 그래서 워싱턴이랑 뉴욕에 집중된 자본들 덕분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바가 참 적다. 너무 멀리서 일어나는 일들이니까. 청와대나 G8 혹은 월가에서 일어나고 결정되는 일들이니까. 이런 관점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너무 거대해 보이고 다다르기 힘들어 보인다. 우리는 그냥 피해자일 뿐. ㅡ.ㅜ
  하지만 푸코의 논의는 이런 경제체제 혹은 정치체제를 만들어내는 합리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합리성을 만드는 데는 나 또한 동참하고 있고, 나 또한 그것의 산물이다. 신자유주의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서 그것에 피해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바로 신자유주의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나라는 인간형을 만드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고, 사태를 인식하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합리성이 신자유주의를 형성하는 주요한 축이라면, 바로 이것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것일 테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주위가 조금 바뀐다고 시대를 관통하는 합리성이 통째로 변형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푸코의 논의는 적어도 우리가 출발할 수 있는 시작점을 알려준다. 쉽게 말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벌여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초조하게 영어학원으로 달려가는 내 자신의 모습이나 성과경쟁으로 점철 된 교우관계를 바꾸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해 준다는 말이다. 이런게 접근 방법을 달리한 중요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문: 어떻게 바꾸면 되나?

 

답: 강좌 때 말하도록 하겠다.

 

문: 지금 세일즈 하나?

 

답: 아니 그게 아니고.....바쁘다고 하지 않았나?

 

문: 그렇긴 하다. 하지만 이런 불량한 태도, 경고 대상이다. 사실, 아직 잘 모르겠어서 대답 못하는 거 아닌가?

 

답: 음......애......넘어가자. 다음 질문 없나?

 

문: ㅉㅉ 바쁘니까 끝내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봐라.

 

답: 푸코가 한 말 중에 참 좋아하는 게, “보편은 없다고 쳐라”(Suppose the univeral does not exist)는 말이다. 그리고 푸코는 만약 현재 보편처럼 기능하는게 있다면,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에 의해 생산되었는지 보자고 말한다. 푸코가 ‘정상’ 이라는, ‘성’ 이라는, ‘비행’ 이라는 보편적 범주를 해체하는 저작을 쓴 것은 그 때문이다. 대신 어떻게 ‘정상’ 이라는 관념이, ‘성’ 이라는 관념이, ‘비행’ 이라는 관념이 만들어졌는지, 어떤 실천이 그것을 구성했는지 세심하게 밝혀낸다.
이건 그냥 지식이 늘리는 일이 아니다. 그걸 뒤집기 위한 기획이다. 만약 우리가 보편적이라 생각했던 범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 위에 서 있는지 밝혀내면, 그 실천을 뒤집는 방법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강좌가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삶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긴 여러 범주와 태도를 의심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많이들 오셨으면 좋겠다.

 

문: 수고했다.

 

답: 고맙다.

 

 

 

 

ps. 사족인데, 푸코가 말한 신자유주의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신자유주의와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푸코가 신자유주의라고 할 때 그것은 주로 독일 질서자유주의를  염두에 둔 것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많이 연결되어 있지요. 자세한 내용은 강좌에서....^^

 

 

 

**본 인터뷰는 강사가 심심해서 그냥 혼자 적어본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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