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애독자로서 니체는 망각을 위대한 능력으로 찬양합니다. 니체는 망각 능력을 갖지 못한 자들을 ‘원한의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원한의 인간은 고집스럽게 과거의 기억만을 고수하며 새로운 가치의 생성을 거부하고 방해하는 자라고 합니다.
몽테뉴는 자신의 나쁜 기억력을 매우 자랑스러워 합니다. 잘 잊기 때문에, 다시 만나는 사물에 대해서 새로운 즐거움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하며, 특히 과거에 받은 모욕이 잘 생각나지 않는 점을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몽테뉴의 관점에서 보면, 기억력이 나쁜 것이 인생을 사랑하는, 소중하게 지켜나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보입니다.
1. 사물을 처음처럼 감각하는 것의 소중함.
2. 과거의 나쁜 기억에 사로잡혀 현재의 시간이 나쁨으로 소비되는 것의 안타까움.
니체는 기억에 집착하는 것은 정신의 컴컴한 카타콤에서 죽은 자들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하고 썩은 공기만 들이마시는 것과 같고, 기억에 중독된 이들에게 필요한 빛이란 바로 망각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 슬픔 많고 모욕많은 세상에 우리가 쉽게 잊을 수조차 없다면!
우리는 일평생 체험한 불쾌감과 모욕감과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지나간 시간에 사로잡혀 있겠지요. 니체가 기대하는 진정한 삶을 놓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므로 불변하는 기억 자체가 일종의 질병일 수 있다는 니체의 결론에 동의하게 됩니다. “망각의 새로운 활용”. 문장이 주는 힘, 어려운 니체 읽기를 이어가는 이유입니다. (프라하)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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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프라하님이 말씀해주신, '사물을 처음처럼 감각하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서 니체의 기억과 망각에 대한 개념과 연결해서 제 나름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물을 처음처럼 감각하려면, 그 사물에 대해 감각했던 이전의 경험을 '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중요한 이유는, 사물도 그 사물을 지각하는 나라는 사람도 끝없이 변화하는데, 그 사물에 대한 이전의 기억, 감각을 유지한 상태에서 그 사물을 다시 바라본다면, 그 사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말끔하게 잊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프라하님의 후기를 보며 했습니다. 인상적인 후기네요! ^^
짧지만 임펙트 있고 멋진 후기입니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오는.
이처럼, 세미나시간에 나누었던 토론 가운데 하나만 자기 것으로 가져가도 훌륭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기술로서 철학'이란 이런 의미지요. 프라하가 선택한 삶의 철학은 '기억과 망각'이군요!
"1. 사물을 처음처럼 감각하는 것의 소중함.
2. 과거의 나쁜 기억에 사로잡혀 현재의 시간이 나쁨으로 소비되는 것의 안타까움." _프라하
니체는 기억(기억에 사로잡하는 것)을 '질병'으로, 망각(기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능력'으로 간주했습니다.
망각의 소중함과 기억의 위험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어 덧붙일 말이 없을 거 같습니다. ㅎㅎ
그런데 진은영은 프롤로그에 기억/망각을 가져왔을까요?
그것은 기억/망각이 불멸성/영원회귀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말하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스적 불멸성이 기억과 연관되는 것이라면, 영원회귀는 망각과 배치되는 개념인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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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니힐리즘의 극복과 영원회귀]에서는 3가지의 영원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3가지 영원성은 니체의 '니힐리즘 극복의 도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도식은 '인간의 유한성으로부터 오는 니힐리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1] 먼저, 플라톤철학과 기독교사상의 영원성(Ewigkeit) _p35~36, 52
:: 형이상학적 영원성, 초월적 영원성 / 니힐리즘 (전통적 종교적 니힐리즘)
이는 유한한 인간 실존을 허무하게 느끼면서 이데아나 신같은 영원불변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적 기독교적 영원성은 형이상학적 '초월적 영원성'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이러한 영원성에 대한 추구를 '니힐리즘'이라고 부르면서, 오히려 삶을 병들게 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적 과제를 '니힐리즘의 극복'으로 설정하게 됩니다.
[2] 다음, 그리스적 불멸성(Unsterblichkeit) _p18, 46, 49
:: 예술적 불멸성, 현존재의 미학적 정당화, 존재의 영원성 / 니힐리즘 극복 불가능 (1부의 주제)
니체는 플라톤주의와 기독교가 추구하는 영원성에 대한 대안으로, 그리스적 불멸성을 고려합니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유한성과 사멸성을 자각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예술적 구원을 추구합니다.
즉 그리스적 불멸성의 사유는 예술적인 구원을 추구함으로써 니힐리즘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작품 속에서 불멸의 운명을 획득하듯이,
그리스인들은 폴리스라는 기억공동체 속에서 불멸의 명성을 획득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적 불멸성을 '예술적 불멸성;, '현존재의 미학적 정당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월적 영원성이 '시간 밖에 있는 피안의 세계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리스적 불멸성은 '시간 안에서 영속하고 지상과 이 세계에서 죽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월적 세계관은 '우주가 고정불변하는 영원성을 가졌다'고 말한다면,
그리스적 불멸성은 '끝없이 변화하며 그 변화를 통해서 불멸한다'고 말하기를 즐기는 것입니다.
초월적 영원성이 저 세계에서의 영원성을 원하는 것이라면,
그리스적 불멸성은 지금 이곳에서 영속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현존재를 예술적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적 영원성은 '존재의 영원성'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적 불멸성에 대한 사유는 현재에도 이런 형태로 존재합니다.
'인간은 개체적으로는 유한하지만 류적으로는 영원하다'거나
'인간은 자손을 낳음으로써 영원히 존재한다'는 거지요. ㅎㅎ
[3] 결국, 영원회귀(ewige Wiederkehr) 사상 _p17, 31, 44, 45, 71
:: 생성의 영원성 (=소멸의 영원성, 영원성을 부정하는 영원성) / 니체의 니힐리즘 극복전략 (2부의 주제)
그러나 니체는 그리스적 불멸성이 니힐리즘의 극복에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자각합니다. p46
그리스적 불멸성은 니힐리즘에 대한 불완전한 구제이며, 부정적 영원성에 대항해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리스의 폴리스는 물론이고,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로마제국조차 붕괴되었습니다.
불멸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자들일수록,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 거대한 허무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지요. p31
니체는 니힐리즘의 극복(완성)이 영원회귀를 통해 가능하다고 봅니다.
니힐리즘이 생성(변화.사멸성.유한성)을 악한 것으로 간주한 후 이를 증오하고 부정하는 태도인 반면,
영원회귀 사유는 생성이 세계의 근본현실임을 밝히기 위해 어떤 종류의 실체성과 보편성을 거부합니다.
영원회귀에는 영원성에 대한 부정과 긍정이 동시에 있습니다. p45
니체가 부정하는 영원성은 플라톤적 기독교적 영원성인데, 목적.본질.형상처럼 고정불변하는 것을 상정하는 것입니다.
니체가 긍정하는 다른 종류의 영원성은 반플라톤주의적이고 반기독교적 영원성입니다.
'니힐리즘의 귀결'인 영원성을 사용해 '니힐리즘을 극복'하려는 니체의 전략입니다. p45
생성이란,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흐름 자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성의 영원성'은 '소멸의 영원성'과 같은 의미이고, 생성과 소멸이라는 '흐름의 영원성'입니다.
여기서 생성(변화.사멸성.유한성)의 인정과 생성의 긍정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생성에 대한 퍼스펙티브! p36
생성의 인정이 변화.사멸성.유한성을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인 반면,
생성의 긍정은 변화.사멸성.유한성을 삶의 자극제로 기쁨의 계기로 받아들이는 관점을 말합니다.
그리스적 불멸성은 여전히 변화.사멸성.유한성을 부정적인 것으로(생성=유죄) 생각한다는 점에서 니힐리즘과 동형적입니다.
영원회귀의 사상은 변화.사멸성.유한성에 대한 긍정(생성=무죄)이 니힐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생성의 철학에는 소멸하는 슬픔에 대한 위로 대신에 사물과 자신의 소멸을 철저하게 긍정하는 용기가 존재한다.
니체는 이러한 냉정한 용기를 사랑했다. 니체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보여주는 윤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원자론이 종교, 신화, 이전의 철학이 주는 어떤 위로도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p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