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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예감, 그리고 기술(記述)의 정치학

지영/수유너머N 회원

 

1. 전장을 둘러싼 두 개의 기억

전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을까? ‘가해자혹은 피해자로 폭력과 관계한 사람들, ‘생존자혹은 사망자로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 전장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침묵하는 자증언하는 자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전장을 기억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으로 회수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 온몸으로 전장을 경험한 이들에게 전장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기억의 상기라는 형태로 전장은 계속해서 소환되고, 이들은 오늘도 전장을 살아간다.

전장을 기억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국가의 주도 아래 전장 앞에 수식어를 붙여서 의미를 확정하고, 기억을 국가가 전유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 속에서 국가에 불리한 기억은 봉합되고, 개별자의 목소리는 소거되며, 사람들의 이름은 지워진다. 이 방식은 전장을 하나의 고정된 역사적 사실로 만들기 위해 보편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이 방식 안에서 모든 전장은 과거에 귀속되어 화석처럼 굳어진다.

반면에 두 번째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언어로 전장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전장에서 일어난 폭력이 아직 나에게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이 이미 남의 일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잠재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폭력은 언젠가 현세화(actualization)’되어 나에게 가해질 수 있고, 그 언젠가는 지금 곧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기억은 죽음 일보 직전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기억의 잔여들은 봉인되지 않고 되살아난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후자의 방식이다. 후자는 전자와 달리 전장을 과거 속에 가두지 않는다. 전장은 과거에 끝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일상과도 연결되며, ‘기억은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며 현재를 건설할 수 있는 힘으로 기능한다. 기억이란 멈추지 않고 사고를 확장하는 회로이며, 이처럼 구성된 기억은 기억하는 자의 몸을 덮친다. 기억이 신체 속으로 파고 들어올 때, 앞으로 남은 일은 기억을 담은 몸으로 전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기술(記述)하는 것이다. “기술한다는 것은 잔향음을 되살리고 상흔을 부각시키며 여진을 투쟁의 일부로 제시하여 새로운 전황의 전개를 낳는 그러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2. 기억나지 않는 언어와 예감의 표상

사카타 기요코의 <기억나지 않는 언어>는 기억 속의 언어가 재구성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기억 속에도 언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언어들은 굴절을 겪으면서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 부서진 언어들은 하나의 의미로 응결되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우리는 그렇게 흩어진 언어들을 찾아서 그 언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기억과 관계될 때 기술(記述)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언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결 명령이 떨어지자 갑자기 튀어나온 리카시만카이(, 마을로 돌아가자)’라는 오키나와어, 투항하자는 상담과 설득에 사용된 오키나와어, 일본군을 비방하는 오키나와어, 일본군을 비방하는 오키나와어 대화, 전장에서 밤이면 밤마다 울려퍼진 류큐 민요

 

위의 제시문은 죽음의 명령 앞에서 튀어나오는 오키나와어와 그 언어에 담겨 있는 저항성을 보여준다. 일본군이 금지했던 오키나와어는 자결 명령이 떨어지자 다양한 방식으로 튀어 나온다. 이 언어들은 죽지 않은 자들의 언어이며, 죽음을 직면했지만 죽음에서 이탈하려는 자들의 언어이다. 훗날 이 언어를 사용했던 이들은 기억이라는 조각난 과거를 다시 짜 마주는 고통스러운 작업에 동참해야만 한다.

그때 문제가 되는 것은 갑자기 튀어나온 저항의 언어가 아니라 기억을 언어로 직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분절화의 가능성이다. 죽음을 직면한 순간 저항의 언어를 내뱉었더라도, 전장을 빠져 나온 많은 사람들이 그 기억을 언어화하지는 못했다. 뿐만 아니라 몸은 전장을 기억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멈춰 선다면 전장은 말하지 못하는 기억혹은 기억할 수 없는 언어의 자리가 되고 말 것이다.

전장을 경험한 이들의 기억이 언어 혹은 언어가 아닌 어떤 표상을 매개로 부상할 때 그것을 해석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 ‘전장의 기억은 말할 수 없는 말과 말이 되지 못한 증후들이 서로 엉킨 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체 옆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언어 행위의 임계에서 우리는 폭력에 저항할 어떤 가능성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며, 기억이라는 회로에 접근해서 찾아내야 하는 가능성이다.

더불어 언어뿐 아니라 침묵의 순간에 몸에서 흘러나오는 식은땀이라는 예감의 표상, 다시 말해 도미야마는 증후라고 부르는 것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폭력의 상황 속에서 식은땀은 계속 진압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하는 사람과 독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해야 할 때, 또는 식은땀을 해석해야 할 때 등장하는 것이 빌려온 말인 남유(濫喩)’의 언어임을 상기해야 한다. 이 언어는 대상과 직선적으로 관계를 맺어 의사소통의 시간을 단축시키지는 않지만, 폭력의 예감을 기술하여 그것을 공유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3. /답의 어긋남과 동상이몽의 지정학

  파농의 말처럼 “‘말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타자에 대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말한다라는 동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발화의 주체인 발신자와 발화의 타자인 수신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서는 필연적으로 어긋남이 존재한다. 수신자는 발신자의 의도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발신자 역시 수신자에게 자신의 의도가 전부 전달될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서로가 상대에게 절대적 타자이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는 이해와 합의가 불가능한 지점이 존재한다.

이처럼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 그 중에서도 질의와 응답 사이에 존재하는 어긋남을 포착한 작품이 있다. 이 작품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상황은 제국 일본의 여성과 오키나인의 대화이며, 특히 일본인 여성이 오키나와인을 심문하는 구조로 추정된다. 도미야마가 여러 책에서 분석한 것처럼, 야마노구치 바쿠의 시 회화(會話)를 질의 응답을 중심으로 도식화해 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나온다.

Q1 고향은? A1 아주 먼 저곳

Q2 아주 먼 저곳이라면? A2 남방(南方)

Q3 남방이라면? A3 아열대(亞熱帶)

Q4 아넷타이! A4 적도(赤道) 바로 아래 저 근처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고향을 중압감 속에서 재구해 나간다. 여자의 단순한 질문에 대해 는 구체적인 사유를 거친 후 위와 같은 단계적 결론에 이른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내가 아열대라고 대답한 것을 여자가 아넷타이!’라고 되받아치는 장면이다. ‘아열대아넷타이는 동일한 언어이지만 발화자의 의도 또는 정념에 따라서 이 둘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에게 아열대가 자신의 고향인 오키나와를 직접적으로 발음하기 어려워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면, 여자의 아넷타이에는 남방까지 뻗어나가려는 제국 일본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제국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고향을 직접 발화하기 어려운 오키나와인과 영토 확장의 꿈을 표현하는 일본인 여자의 꿈은 동일한 대상에 대한 상이한 반응을 대변한다. 또한 이 둘의 어긋남은 같은 자리에서 다른 꿈을 꾸는, 즉 동상이몽의 지정학이라고 부를 만하다.

위의 대화는 일본의 본토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식민지도 아닌 오키나와라는 경계의 땅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대화는 제국으로 편입되기를 원하지 않는 오키나와인과 오키나와가 제국의 영토임에 감탄하는 제국인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서로 다른 소망을 지닌 채 오키나와를 직접적으로 발음하지 않는 이 둘의 모습은 오키나와라는 번역 불가능한 대상을 탁월하게 그려낸다. 또한 정답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질의 응답은 오키나와가 놓여 있는 지정학적 상황을 시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침묵으로 대결하는 자들 : ‘X’라는 기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도미야마의 논의 속에서 폭력의 예감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소재는 식은땀이다. ‘예감이 정서적 차원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신체성의 문제임을 이야기하기 위해 도미야마는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 몸이 느끼고 있는 어떤 것식은땀으로 보여준다. 당면한 상황을 넘어서는 초과의 무엇인가가 식은땀으로 물질화되어 분출되는 것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식은땀이다. 그리고 식은땀이라는 예감의 표상 속에서 방어태세를 취하는 누군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증후학이 봉인하려고 했던 침묵하는 타자이다. 그러나 봉인은 깨질 것이고 이들은 침묵하는 타자이기를 멈추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식은땀을 흘리는가? 도미야마는 일본과의 동질성을 증명해야 하는 오키나와인의 식은땀을 분석했지만, 식은땀을 흘리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다. 폭력적 상황에 압도되어 말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렸던 이들이 살아남아 증언하는 순간이 도래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아래에 있는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과 시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였다. 세월호 안에 있었던 아이들도, 피해 학생의 부모들도 이 사건이전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에 담겨 있는 진의, 즉 더 이상 (세월호라는) 전장을 기억하지 말라는 강요 앞에서 아이들과 유가족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그 강요를 훨씬 넘어서는 강도로 기억의 장으로 끌려들어갔다. 누군가는 살아서 나온 장소, 그리고 누군가는 죽어서도 나오지 못한 곳, 그곳이 바로 우리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전장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라는 보수층의 요구에 대해 ‘X’ 표시가 들어간 마스크를 쓰고 항의를 하는 침묵 시위가 벌어졌다. 시민들의 입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그 마스크에 적혀 있는 ‘X’자는 말보다 강력한 의미를 전달한다. 특히 가만히 있으라라는 문구 위에 존재하는 ‘X’라는 기표에는 권력의 강요에 의해 사물이 된 자신이라는 수동성과 스스로가 사물이 되는 능동성이 포개어져 있다. 수동성의 상징인 ‘X’라는 언어가 개시되고, 침묵이라는 또 다른 수동성이 여기에 결합되는 순간, 이 수동성들의 연쇄는 역설적이게도 능동성으로 전환되어 언어의 질서를 월등하게 넘어서는 저항성을 뿜어낸다.

도미야마는 다초점적 확장주의(Multifokaler Expansionismus)’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초점이라는 말에서는 금지와 난로라는 두 개의 의미가 중첩된다. 이 초점에는 질서로부터 배제되거나 폭력을 당한다는 수동성과 스스로 난로에 모여드는 능동성이 뒤섞여 있다. 금지와 난로가 반복되면서 초점은 복수가 되어 확장되는데, 이 다초점적 확장주의의 요점은 금지의 영역을 사람들이 모이는 난로로서 부단히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금지에서 시작된 난로는 미래의 힘일 수 있으며, 그 힘을 지각하며 모여드는 사람들은 방어태세를 취한다. 이때 금지를 낳는 현행 질서의 근간은 가만히 있으라와 같은 언어이다. 반면 저항하는 신체는 이 언어 질서의 붕괴에서 먼저 발견된다. 침묵으로 대결하는 자들이 보여준 것은 질서를 유지하려는 언어에 대항하며, 버티고 서 있는 신체의 힘이었다. 금지와 금지의 언어를 넘어서는 힘, 그것이 바로 침묵으로 대결하는 신체에 담겨 있다. 금지된 영역에 모여드는 신체들이야말로 난로를 탄생시키는 힘이다.

 

5. 우울증적 신체와 언어의 힘

2014년에 방영한 일본 애니매이션 <사이코패스> 시즌2에는 함께 수학여행을 갔던 친구들이 비행기 사고로 모두 사망한 후에 혼자 살아남아, 친구들의 시체가 정치권력과 의학권력에 의해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목격하는 인물(카무이)이 등장한다. 유일한 생존자인 그의 눈에 각인된 것은 수많은 친구들의 시체였고, 그 시체들의 눈에 각인된 생명체는 그 하나였다. 카무이가 경험한 비행기 안은 도미야마가 이야기하는 전장과 다르지 않다. 그 공간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카무이의 삶은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구성된다.

성인이 된 카무이는 친구들의 홀로그램을 성장시켜서 그것을 뒤집어 쓰고 체제에 저항한다. 홀로그램으로 성장한 친구들은 카무이에 의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자가 되어 국가 시스템 안을 활보한다.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볼 경우, 카무이는 죽은 친구들을 떠나보내는 애도에 실패한 우울증적 신체라고 할 수 있다. 카무이는 자신의 의식과 마음속에서 친구들과 분리되지 않는다.

도미야마가 분석하는 시체의 눈에 각인된 자역시 우울증적 신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옆에서 죽은 시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죽은 자가 동료나 가족, 연인이나 친구일 경우 죽음을 목도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을 떠나보내는 애도에 실패하고 우울증적 신체로 전환될 수 있다. 사랑했던 대상은 나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남아 내 인격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기존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언어와는 다른 언어의 힘이 요구된다. 타자를 자신 안에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울증적 신체들이 만들어내야 하는 언어가 바로 그것이다. 도미야마는 저항하는 몸과 함께 혹은 그 후에 도래해야 하는 언어의 힘을 설명하기 위해 루쉰의 예를 가지고 온다. 목숨을 건 영웅들의 죽음이 아니라 살아남은 겁쟁이들의 기억과 예감과 사상이 기술되는 것을 긍정하기 위해서, 그는 글은 어차피 먹으로 쓰는 것이다. 피로 쓴 것은 혈흔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인용한다.

이 문장을 통해 루쉰과 도미야마는 운명을 결정하는 언어의 힘을 인정하는 곳에 도달한다. 전장의 기억과 폭력의 예감을 현세화하는 것도 언어이고, 풍경과 신체에 기입된 의미를 해독하고 기술하는 도구도 언어이다. 그러므로 언어를 매개로 이 의미들을 해독하고 기술하는 작업은 사고가 현실의 틀에 머무는 것을 막아주고, 사적인 경험을 공적인 현상으로 만들어준다. 또한 전장의 기억과 폭력의 예감을 넘어 미래를 열어갈 사상을 생각한다는 것 역시 언어로써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운명을 바꾸는 언어의 힘, 즉 기술(記述)의 정치학이다

 

1) 도미야마 이치로, 휘말린다는 것, 휘말림의 정치학, 정상희 역, 그린비, 2012, 17.

2) 도미야마 이치로, 폭력의 예감, 손지연김우자송석원 역, 그린비, 2009, 88.

3) 사카타 기요코는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는 현대 미술가이다. <기억나지 않는 언어>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흰 종이 위에 알파벳을 적고, 그 위에 오키나와의 특산물인 소금 결정을 올려서 글자들이 잘 보이지 않게 배치하였다. 소금 결정을 투과한 글자들은 잘 보이지 않거나 일그러진 형태로 보이기 때문에 종이 위의 글자를 정확히 해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한 간혹 눈에 보이는 글자들을 조합해서 그 의미를 추측하더라도 그것은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 작품의 의미를 찾아가는 방식은 기억 속의 언어를 찾아가는 방식과 유사해 보인다.

한국 작가인 양무현의 작품인 <>에는 위안부 여성들의 신체에 기입된 기억과 그 증언의 언어가 지닌 특징이 담겨 있다. 그녀들의 증언은 균질적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언어에 접근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독자 혹은 청자의 능동성이 발휘된다면 그녀들의 언어에 접근하고 그것을 해독하는 일은 결코 불가능한 작업이 아님을 작품은 보여준다.

 ①       ② 

阪田淸子, <せない言葉>, 2014 양무현, <>, 2014.

4) 도미야마 이치로, 전장의 기억, 임성모 역, 이산, 2002, 82.

5) 김철도미야마 이치로, 말하지 못하는 기억 침묵의 웅변을 듣는다, 당대비평통권 제21, 2003.3, 414.

6)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노서경 역, 문학동네, 2014, 17.

7) 도미야마 이치로(2009), 위의 책, 146.

8) 가만히 있으라슬픔의 카피 명동 침묵 시위, 민중의 소리, 2014.5.1.

http://www.vop.co.kr/A00000750010.html

9) 여기에 등장하는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에서 선원들이 학생들에게 했던 말을, 정부가 다시 가족들에게 사용했기 때문에 중의적인 성격을 지니는 명령어이다.

10) 도미야마 이치로, 탈식민지화를 떠맡는 언어의 존재방식에 대하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발표문, 2015. 1, 16.

11) 도미야마 이치로(2012), 앞의 글, 22-23.

12) 도미야마 이치로(2009), 앞의 책, 각주 23번 참조, 162.

1926318사건이 있던 날, 루쉰은 먹으로 쓴 허언(虛言)은 피로 쓴 사실을 감출 수 없다.”고 말한 후, “피의 빚(血債)은 반드시 동일한 것으로 갚아야 한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남겼다. 그리고 2년 후 글은 어차피 먹으로 쓰는 것이다. 피로 쓴 것은 혈흔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글보다 더 감동적이며, 더 직선적이긴 하지만 색이 변하기 쉬우며 사라지기 쉽다라고 말한다.

13) 도미야마 이치로, 유착의 사상, 서장 각주 12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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