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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짜라투스트라 머리말, 1부- 후기

한지원 2017.05.18 11:35 조회 수 : 651

 

끔직한 일이 된다. 아름다운 음악을 음치가 부르려는 것은. 마찬가지로 또한 끔직한 일이다. 아름다운 강의를 졸필로써 토해낸다는 것은. 이 후기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첫 시간에 배워 가슴에 새긴 교훈 완벽한 것은 없다. 그리고 세상은 오해의 바다라는 것을 믿으면서

나의 이해가 진경샘의 이해와 터무니 없는 엄청난 거리의 오해를 가짐을 미리 예감하면서 시작합니다.

 

진경샘은 짜라투스트라 머리말에서 초인의 의미, 위버맨시의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초인의 의미는 넘어서는 자, 대지에 충실한 자, 높은 하늘의 희망의 나라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 그 초인은 존재가 가진 의미를 터득시키는 자, 존재의 의미를 묻는자. 즉 죽음과 삶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자.  이 초인의 의미를, 진경샘은 파농의 이야기를 들어 인상적으로 설명하십니다. 

 

파농이 기차 여행하던 중, ( 파농은 흑인인가 봅니다) 기차 안에서 파농을 본 꼬마 여자 애의 “엄마’ 깜둥이야. 흑인이야”라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면서, 자신을 향한  “깜둥이야, 흑인이야”라는 규정이 틀린 것은 아닌데 자신은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무엇인가 자신을 설명하는 그 언어를 받아 들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이 백인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흑인”이라는 말로 자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라고 파농은 생각합니다. 주체가 포착하는 단지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는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포착한 대상은 실제 자신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파농은 특정한 규정으로 자신을 포착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상에서는 그의 존재를 포착하려는 시도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나의 존재는 타자가 규정하는 대상과는 다른 것이고, 나는 흑인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또 그 무엇으로 규정할 수 없는 환원 불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자아는 미규정적, 무규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아는 본질적으로 그 규정을 초과하는 넘어서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마치 라깡의 정신분석에서 늘 상징계는 한계를 가져 욕망의 결핍을 갖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규정성으로 인해 축소되는 것을 거부하고, 그 규정성으로 나를 가두는 것을 웃으며 탈출하는 것. 그 타자의 규정성을 넘어 설수 잇는 잠재성. 바로 여기서 초인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존재란 지금 나를 규정하고 잇는 것들을 넘어설 수 있는 잠재성의 능력, 이것이 존재의 의미, 바로 넘어서는 자인  “위버맨시”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인이라는 것입니다. 진경샘에 따르면 니체의 존재의 의미, 즉 위버맨시는 지금 나를 규정하는 것들, (타자의 의하여, 혹은 내자신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런 규정들을 넘어서는 존재, 나의 잠재성을 발동시켜 넘어서는 존재가 초인이라고 , 위버맨시라고 합니다. 

진경샘은 이렇게 초인, 위버맨시, 존재론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초인을 정의하는 두가지 분류를 합니다. 

첫째는 깨달은 자, 즉 도달한 자로써 초인입니다. 짐승과 초인 사이에 줄이 있을 때 그 끝에 도달한 자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인간이 자신의 현재의 넘어서야 할 것을  매순간 넘어서는, 그  순간마다 초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멈출 때는 더 이상 초인이 아닌 것입니다. 초인은 행위로써 정의 된다는 것이지요. 전자는 니체가 주로 설명하는 관점이지만, 후자는 진경샘의 관점입니다. 

진경샘은 상승과 하강을 자유롭게 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존재, 넘어섬의 벡터를 가진 존재, 이러한 존재를 초인이라 설명하십니다.

이런 관점의 초인이 영원회귀와 더 논리적으로 맞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의라면, 우리 모두 초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이루었을 때 초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위해 매순간 우리 자신이 타자와 원하지 않는 우리 자신을 넘어가는 순간 우리도 초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자체로 자체적으로 초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존재와 초인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 앞의 벽을 넘어가지 못할 때, 견딜 수 없는 이름으로 내가 불려질 때 우리는 어찌 해야 할까요? 

넘어야 초인인데, 원치 않는 이름들을 떨쳐 낼 수 없을 때 어찌 해야할까요?

 

이때, 생명과 시작을 이야기 하십니다. 몰락을 두려워 하지않는 다는 것, 그 몰락을 첫 대면 순간부터 긍정한다라는 것을 책에서 발견해 내 설명하십니다. 파멸과 몰락의 구별, 자기를 넘어선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어떤 보장도 어떤 안전 장치도 없음을 말하십니다. 자기를 넘어서는, 원치않는 규정을 해대는 세상을 벗어난 탈주는 위험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든든한 보장이 창조를 만들 수는 없다고, 어떤 보장도 없는 위험이 존재하는 세계로 가려면, 즉 자신에 맞는 모습으로 이름 불리길 원한다면, 그 새로운 세계로 가려면 필수적인 용기를 말합니다.누가 나를 무너뜨리고 나를 일으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존재의 의미와 초인의 의미 위버맨시에 대해 머릿말에서 설명해주십니다.

 

자신이 초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용기. 그 방법에 대해 1 부에서 설명하십니다.

 

초인이 되는 방법, 즉 새로운 창조를하는 정신에 대해 세가지 변화라는 꼭지에서 설명됩니다.

첫째 변화 낙타는 모든 부정적인 것을 짊어지고 의무감에 묵묵히 해내가는 견디는 힘에 대해서 그리고 두번째 변화의 모습인 사자는 의무감에 해내온 것들 후에 그것들을 하고자하는, 하고 싶어 하는, 자기긍정에 기초하는 욕망, 그 욕망에 기초하는 혁명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 혁명으로 찾은 속박으로 부터의 자유 그러나 이 자유는 창조를 탄생 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변화, 어린아이의  모습을 가르칩니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타자에, 이질적인 것에 다가갑니다. 창조를 한다는 것이지요. 자기를 잊고 타자에 집중하고 타자가 되고 새로운 세계로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묻지 않고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순진 무구함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가지 변화된 정신의 양상이 초인이 되는 정신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유 없는 곳에서, 설명 안되는 곳에서, 우리는 좀더 관대해야 한다고 진경샘은 가르치십니다. 그 관대함이란 혹시 성급한 판단을 중지하고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요? 이유를 묻기 보다는 무엇을, 방법을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진경샘은 동정과  “거리에의 파토스”에 대해 언급을 하십니다. 

 

거리에 파토스란  강한 것과 약한 것, 위대함과 비소(卑小)함, 고귀함과 저열(低劣)함 등에 따라서 인간의 유형을 둘로 나눌 때, 이들 속의 전자(前者)가 후자(後者)에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후자와 거리를 두면서 자기 자신을 지켜 나가고자 하는 파토스라는 것입다. .

F.W.니체가 사용한 말로서,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 인류의 향상도 기할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부터 동정(同情) 엄격하게 배제됨과 아울러 그의 귀족적인 사상이 전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거리에의 파토스 [Pathos der Distanz, 距離─] (두산백과)

 

거리를 둔다는 것은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 보다, 혼자 자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일 거라 추정합니다. 그런 모습이 자신의 고귀함을 지키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또  여기서 동정은 넘어설 것들, 즉 타자에 의한 원치않는 규정, 자신이 만든 원치 않는 것들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아 패자들끼리 서로 위로하는 감정,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의 실패에 대한 공포, 그 실패의 공포에 짓눌려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패배의 공포에  무릎 꿇은 패배자들 끼리의 서로들의 위로 라고 볼 수 있겠다. 서로 멸시하는 위로라 할 수 있겠다. 

 

니체의  동정의 비판적 사용은, 위버맨시의 필수인 넘어섬, 즉, 창조, 용기를 긍정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되어집니다.

 

한가지 의문은 세가지 변화 낙타, 사자, 어린아이 이 정신의 모습이 발전적 단계인지, 아니면 타자를 대하는 방식인지 궁금합니다. 

후자의 타자를 대하는 방식으로서의 정신이라면, 낙타는 무게를 진 만큼 가치를 느끼는 정신이어서 늘 산술적인 계산만 하는 , 그래서 모험도 못하는 정신이고, 사자는  욕망에는 충실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타자를 해하여, 결국은 자신만 남는, 누구도 넘어서지 못하는 그런 정신이고, 어린아이는 타자에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다가가서 몰입하여 그것이 되어버리는 그래서 원하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를 말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진경샘 너무 강의가 훌륭해서, 이해하기 지칩니다. 조금만 많이 못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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