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는 『자본을 넘어선 자본』에서 자주 거론되었던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기로 했다. 칼 폴라니의 영향을 받은 많은 학자들의 100페이지에 가까운 서문의 압박을 이겨내면서 어렵게 제1부 국제 시스템을 읽을 수 있었다. 19세기 유럽 문명을 지배했던 국제 시스템을 읽으면서 유럽의 전쟁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19세기 문명이 왜 급작스럽게 붕괴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제시하면서 그 기원을 파헤치고자 한다. 그 기원을 찾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인 1815년부터 1914년까지의 백년평화에 대해서 분석한다. 유럽에서는 여전히 지역적인 국지전도 분명히 있었고, 내전, 혁명, 반혁명이 일어난 시대였지만, 여러 국가들이 참여하는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백년 가까운 기간동안 왜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일까?
여기서 폴라니는 백년 평화를 지지해주는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유럽은 시장의 자기조정 메커니즘을 맹신했다. 인간의 보편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신기루로 여기고 있지만, 폴라니는 자기조정시장을 유토피아로 생각했다. 사회는 가격 결정 메커니즘으로만 작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19세기 문명은 하나의 신화처럼 자기조정시장을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거대한 전환을 맞이해야만 했다. 인간, 토지, 화폐는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상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품 시장에서 거래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칼 폴라니는 인간, 토지, 화폐를 이익을 얻기 위해서 거래될 수 없는 신성한 무엇이 있다고 여기길 원했다.
인간을 신성한 무언가가 있다고 보는 것에 인간중심주의라고 생각되어서 거부감이 든다고 의견을 내주신 분이 있었다. 그러나 신성하다는 표현을 누군가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무언가로 해석한다면 인간중심주의라고만 말할 수 없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중세 시대 인간을 사고 파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의 이면에 어떤 신성한 면이 있었다면,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과 자연을 함부로 처분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하게 만들어버리는 위험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인용해본다.
우리가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이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P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