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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혁명가들] 네번째 강의 후기

팔로횽 2014.06.17 12:40 조회 수 : 618

 이번 [제4강 로자: 진정한 혁명의 동력은 어디에 있는가?]의 논의 주제는 “공산주의 혁명은 왜 인민대중의 혁명이라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가?”였다. 다시 말해 로자는 왜 ‘대중’을 진정한 혁명의 동력으로 본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가 진행되었다. 강의 과정에서 살펴보았던 쟁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계급감정 - 의식성과 자발성을 둘러싼 레닌과 로자의 견해 차이

 진정한 혁명의 동력이라고 함은 혁명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다. 맑스는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의 주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혁명을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노동자는 어떻게 자신들의 계급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지난 강의 때도 살펴보았듯이, 혁명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서 레닌은 전위당이라는 외부로부터 노동자에게 계급의식을 주입해야한다고 했다. 노동자는 비의식적으로 경제투쟁을 하기 때문에 자생성을 의식성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위의 개입과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로자는 레닌과 달리 노동자에게 내재한 본능, 정서, 정념 그리고 계급감정 등에 주목하였다. 결국 이러한 차이는 ‘자생성’과 ‘의식성’에 대한 인식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레닌은 노동자의 임금투쟁은 조합주의적 경제투쟁이며, 자본주의적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경제투쟁을 통해서는 정치투쟁을 비롯한 공산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오히려 자본주의의 폐지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생명연장에 도움을 주는 폐해를 낳을 수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레닌은 비의식적 영역인 노동자의 자생성을 ‘자본주의적 습성’으로 보았기 때문에 계급의식 또는 의식성이라는 의식적 영역을 중시한 것이다.


 하지만 로자는 레닌이 주목하지 않았던, 비의식의 영역인 계급감정에 주목함으로써 새로운 현상을 포착하고자 하였다. 물론 로자에게도 계급의식 또한 중요한 혁명요소였으나, 정서·감정·정념의 영역인 계급감정을 자발성의 근원이자 투쟁의 동력으로 보고, 이를 통해 ‘대중파업’이라는 이전의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혁명 과정의 양상을 포착하고자 한 것이다.


『빼쩨르부프크 사건에 크게 자극을 받아 노동계급이 1월에 갑작스럽게 일으킨 총반란........이 최초의 전면적인 직접행동은.......계급감정과 계급의식을 처음으로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급감정을 자각하면서 몇 백만을 헤아리는 노동자대중이 자본주의의 사슬에 묶여 몇 십년 동안 끈기있게 견뎌왔던 사회적 경제적 존재조건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아주 갑작스럽고 철저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이 사슬을 뒤흔들고 잡아당기려는 자생적 일반적 움직임이 시작되었다.......1월의 밝은 빛 때문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제 열광적으로 이전에 무시당한 것을 보상받으려고 힘을 쏟았다.』(p.172~173)

요컨대, 로자는 계급본능, 계급감정이 자생적인 움직임을 가져오며, 또한 자생적 투쟁이 격화되는 과정 속에서 노동자 계급 내부에 있던 투쟁의 동력(계급감정)이 깨어나는 것(각성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결국, 대중파업이 ‘왜’ 그리고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해 분석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2. 왜 ‘대중파업’인가? - 로자가 ‘대중파업’에 주목하는 이유 / 혁명의 시초 및 단초로서의 대중파업

 그렇다면 로자가 계급감정을 통해 새롭게 포착하고자 한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대중파업’이었다. 로자 이전에 ‘대중파업’은 무정부주의에서 주장하는 투쟁의 형태였다. 그러나 로자는 맑스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위한 투쟁의 형태로 기존의 정치투쟁이 아닌 대중파업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왜 로자는 레닌과 달리 계급감정 및 자생성에 주목하면서, 대중파업을 설명하고 분석하려고 한 것일까?


 이는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총파업의 사례들과 1905년 러시아 혁명이 기존의 맑스주의 지식인들의 통념을 깨부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로자는 대중파업이라는 새로운 혁명적 투쟁형태에 주목하였다. 이는 평소 로자가 가지고 있던 신념에 확신을 부여한 것이었다. 로자는 당시 독일사회민주당을 비롯한 독일 노동조합의 노동관료들의 계몽주의적 대중관과 중앙집권적 조직 운영에 따른 부패, 억압, 지배 등의 관료주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역사발전의 원동력을 당 조직과 대중 혹은 프롤레타리아의 자발성 사이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독일 노동자 조합의 경제적 개혁주의와 정치적 행동 사이의 간격을 메우기 위한 이론적 노력의 일환으로 대중파업을 설명하고 분석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로자는 프랑스 대혁명의 시가전 모델과 독일부르주아 혁명의 의회주의 정치투쟁의 모델을 설명하면서 각각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해결책으로서 러시아혁명의 혁명적 대중파업 모델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중요한 투쟁형태로 제시한다. 즉, 대중파업이 혁명의 시초이자 단초라고 본 것이다.


『 앞서 일어났던 부르주아 혁명들에서 주된 투쟁형태였던 바리케이드 전투와 국가무장력에 맞서 일으키는 공공연한 충돌은 오늘날의 혁명에서는 단지 노동자대중투쟁의 전 과정에서 절정이나 한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함께 독일사회민주당의 기회주의자들 - 베른슈타인이나 다비트 같은 작자들 - 은 혁명의 새로운 유형으로 계급투쟁의 문명화와 완화를 예언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사실 이들은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쫓아 계급투쟁의 문명화와 약화를 바람직하게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계급투쟁이 완전히 의회 안의 경쟁으로 오그라들고 가두투쟁은 간단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역사는 더 심오하고 훌륭하게 그 해결책을 발견했다.』(p.219~220)


 이렇듯 로자는 역사는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총파업의 사례들과 1905년 러시아 혁명을 통해서 파업모델이 혁명을 위한 수단임을 보여주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역사를 기존 이론틀(시가전 모델, 의회주의 정치투쟁 모델)에 끼워 맞춰서는 안 되고 역사적 인식 하에 새로운 틀(러시아 혁명의 대중 파업 모델)을 통해 혁명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 노동계급의 해방투쟁에서 그러한 정치적 권리와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고도 중요하다는 점은 마크르스와 엥겔스가 인터내셔널에서 무정부주의에 반대해 온 힘을 기울여 투쟁하는 가운데 맨 처음 지적하였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의 모든 가르침에서 밑바탕을 이루는 역사적 변증법은 대중파업사상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무정부주의가 오늘날에는 실천에서 대중파업에 적대적인 것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노동자 정치행동의 대립물로 여겨져 배격당하곤 했던 대중파업이 오늘날에는 정치적 권리를 위한 가장 힘있는 투쟁무기로 등장하였다. 따라서 만일 러시아 혁명 때문에 대중파업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일반적인 방법과 견해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영예를 획득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무어인의 애인은 오로지 무어인의 손에 죽을 수 있을 뿐이다.』(p.152)



3. 대중파업에서의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관계 / 대중파업과 혁명의 관계

 그렇다면 대중 파업이란 무엇인가? 로자에 따르면, 대중파업은 최고위원회의 결정과 일련의 계획에 따라 무미건조한 정치적 행동을 벌인다는 엄격하고 공허한 도식이 아닌 천여 개의 정맥으로 혁명의 모든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 피와 살을 가진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또한 대중파업은 몇 년 동안, 아마도 몇십년 동안 지속된 계급투쟁의 모든 시기를 아우르는 총체적 개념이다. 

 

 이제 대중파업 속에서 나타나는 각종 투쟁을 혁명적 대중화 하는 과정에서 중요시 해야할 투쟁형태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레닌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층위가 다르므로 의식성의 고양을 통해 전면적인 정치투쟁을 통해 혁명을 성취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관계는 대립적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모든 크고 작은 대중파업과 총파업들은 시위성 파업이 아니라 전투적 파업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로자는 러시아에서 노동자 투쟁이 보여주었던 전투적 파업에 주목함으로써 대중파업에서의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관계는 따로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혁명적 운동은 한 방향으로만 즉,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방향으로도 움직이며, 정치투쟁이 확산 및 조직화되고 강화되는 과정을 통해 경제투쟁 또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확산 및 조직화 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요컨대, 로자는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이 두 요소의 통일이 바로 대중파업이라고 하였다.

 한편 로자는 이러한 대중파업 속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상호작용은 혁명적 시기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혁명적 시기의 격렬한 분위기 속에서만 노동과 자본사이의 부분적이고 사소한 갈등이 전면적인 폭발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혁명은 먼저 경제투쟁이 정치투쟁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정치투쟁이 경제투쟁으로 급격히 변화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조건들을 만들어내며 그러한 변화가 대중파업 속에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결국, 로자는 대중파업과 혁명의 관계에 대해 현실에서는 대중파업이 혁명을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명이 대중파업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본다.




4. 대중파업에서의 당과 지도자의 역할

 이상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대중파업에서의 당과 지도자의 역할에 대한 로자의 논의를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로자가 정의한 대중파업에 따르면, 다시 말해, 대중파업이 계급투쟁의 모든 시기, 혁명의 시기를 뜻하며, 대중파업은 우발적이고 우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중앙집권적인 사회민주당이 인위적, 계획적으로 대중파업을 만들어내고 주도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당과 지도자의 주도권과 의식적 지도에 명확한 한계가 있는 것이므로 혁명기에 어떤 원인과 계기들이 대중의 폭발로 이어지는지를 예측하고 계산하는 불가능하며, 오히려 대중의 분위기에 주도권과 지도가 이끌려진다. 이는 대중파업이 계급감정에 기초한 정서·정념의 영역이며, 또한 자발성의 촉발에는 여러 요소들이 상호 복합적으로 관계하면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로자는 혁명적 운동이란 자의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고, 또한 당 간부들의 결정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자발적으로 폭발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로자에게 당과 지도자는 불필요한 존재인가? 아니다. 대중파업의 지도가 혁명적 시기 그 자체의 문제라고 한다면, 사회민주당은 혁명적 시기 한가운데서 정치적 지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즉, 대중들의 자발적인 행동이 미리 알 수 없는 무수한 요소에 의존하고 있을지라도, 당(조직)은 자신의 본질적 사명, 프롤레타리아 투쟁 일반과 특히 대중파업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것,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의지를 강화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고, 수행해야 한다. 당은 대중들이 그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의 정치적 귀결을 알도록 미리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것은 객관적 상황의 성숙과 당의 변증법적 관계 즉, ‘자발적’으로 그리고 ‘적시에’ 터지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당이 아무리 대중파업을 호소해도 대중은 호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편, 로자 또한 혁명정당은 노동자계급의 전위가 되어야 하고, 중앙집권적으로 조직되어야 하며, 다수의 의지가 활동 속에서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레닌과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1904년에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조직 문제」라는 글에서 “역사적으로 볼 때 진실로 혁명운동이 범한 오류는 가장 현명한 중앙위원회가 절대적으로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로자는 지나친 중앙집권주의에 반대하였다. 이는 전지전능한 중앙위원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투쟁의발전, 대중의 창발성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는 인식에 기반 한 것이다.


 물론 로자도 대중에게 막연하게 기대해서만은 안 된다고 보았다.

『인간의 심리만큼 가변적인 것은 없다. 특히 대중의 심리는 모든 잠재적 가능성-죽음과 같은 고요, 포효하는 폭풍, 가장 비겁한 비열함, 그리고 가장 거친 영웅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대중은 항상 주어진 역사적 조건에 따라서 변화하며, 항상 의외의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1917년 감옥에서 마틸드 부름에게 쓴 편지 中)

 이렇듯 대중의 약점과 대중이 보이는 기회주의적 태오데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자는 훌륭한 지도자는 대중에게 실망을 해서는 안 되며, 대중의 일시적인 심리에 따라 전술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필연적 법칙에 따라 계획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론적으로 로자는 러시아 혹은 다란 여러 나라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투쟁의 새로운 형태(대중파업)는 지도자들에 의해 창안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창조적인 주도권에서 나온 것이었고, 무의식적인 행동은 의식적인 행동에 앞서며, 객관적인 역사발전의 논리가 주관적인 역사발전의 논리에 앞선다고 주장하였다. 대중파업에 대한 로자의 논의는 형식주의, 대중운동을 무시하는 경향, 계획된 전략과 의식성을 강제로 주입시키려는 태도를 배격하고자 한 이론적 노력이었다.



 이상 후기를 마치고 추가적으로 강독강좌를 들으면서, 후기를 쓰는 과정에서 들었던 네 가지 의문점을 적어본다. 


 대중파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계급감정이 있어야 할텐데 

  첫째, 그 계급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둘째, 동일한 현상과 사건에 대해 모두에게 반드시 동일한 감정이 생긴다고 할 수 있을까? 때로는 반동적인 정서도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셋째, 이러한 의문에 대해 로자는 계급감정 역사사회적 조건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는데, 이는 결국 로자 또한 맑스나 레닌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 한 것이 아닌가? 과연 정말 지난 20세기의 역사는 혁명으로 필연적으로 귀결되어 왔는가? 

  넷째,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혁명적 시기는 도래하지 않은 것인가? 역사사회적 조건의 형성은 여전히 진행 중인가?


 강의 중에 로자의 비판에 대해 논의하면서 라이히와 그람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이러한 질문이 남은 두 강좌에서 논의를 진행할 그람시를 통해서 조금은 해소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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