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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세이_니체] 초월, 기억, 망각의 영원성

spurezatura 2024.05.11 02:19 조회 수 : 42

초월, 기억, 망각의 영원성

이 은 주

 

봄날은 간다 : 초월적 영원성

“라면 먹고 갈래요?”

라면 하나로 그 남자를 멋지게 유혹하는 한 여자가 있다. 돈이 없어서 연애도 못한다는 요즘 세태로 볼 때 정말 가성비가 짱이다. 20년전에 만들어진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그렇게 겨울에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서 끝이 난다. 그녀와의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남자는 문득 변해버린 여자를 보고 당혹해하고, 고통스러워하며 그 여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찾아간다.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끙끙대던 그의 상실감은 왜 그들의 사랑이 끝났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의미심장한 명대사!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당시 이 영화를 개봉관에서 보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보다 10년정도 연상인 선배교사가 있었다. 국어교사이면서 문학적 감성이 풍부해서 수필도 자주 쓰던 그 선배는 그 영화를 인상 깊게 보았다고 하면서 한마디를 했다. “내 아들이 저런 여자를 만날까봐 걱정된다...” 그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난 그냥 웃었다. 도덕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는다. 그들의 사랑이 끝나는 이유는 진정한 사랑의 상대를 아직까지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으려한다. 이처럼 진정한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아야한다는 문화적 중력장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저 황제는 세계의 변화 속에서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사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물의 덧없음에 눈을 두고 있었다." 『권력에의 의지』, #1065

다시 영화 속 한 남자가 보인다. 그는 초월적 영원성을 믿었지만 그 믿음이 깨어져버린 우리시대의 황제이다.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사랑’이 끝나버린 그 남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혹시 그도 황제처럼 이제 변화하는 것이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으로 니힐리즘에 빠져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 ‘진리’ 등의 초월적 영원성을 믿고 있는 존재들은 이제 사물의 덧없음에만 고통스러워 할 뿐이다.

 

너를 기억할께! : 존재의 영원성

최근에 종영 시청률이 25%에 육박하며 끝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나는 이러한 중력의 힘을 어느 정도 경험했다. 거의 TV를 보는 일이 없는 내 경우에도 주위에서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중반 이후부터 보기 시작했으니 인기가 높은 것은 당연했다. 그런 대중적 인기에 부합하기 위해서였을까. 그 드라마를 쓴 방송작가는 본래 여주인공이 47세에 죽는 것으로 되어있던 것을 갑자기 급조해서 87세에 죽은 것으로 묘비명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렇게 급조된 것이 너무 어설퍼서였는지 마지막 편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결말에 대해 비판을 했다.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권선징악적인 문제해결과 ‘왕자와 공주님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식의 동화 같은 해피엔딩을 덧붙인 상투적인 결말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작가가 대중들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 같다. 한편 욕하면서도 보는 시청자들을 보면 작가가 대중심리를 잘 아는 것도 같다. 

 한 여인을 운명적으로 만나서 사랑하고, 평생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사랑을 종교처럼 믿으면서, 그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 그리고 죽은 아내를 자신이 죽은 순간까지 잊지 않으려는 ‘기억의 몸부림 속에서 영원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설정은 일상적으로 가장 우리들의 감정을 지배하는 중력장인 듯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이제 사람들에게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중들은 대부분 사랑과 행복이 자신을 둘러싼 일상에서 변함없이 지속되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삶에서 부딪히는 고통들을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으며, 이제 이 해석을 넘어서려는 새로운 힘의 강도를 키우고 있는 듯하다.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 : 생성의 영원성

에리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 이전에 니체는 ‘생성이냐, 존재냐’라는 훨씬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니체의 영원회귀의 수수께끼를 아직 잘 모르겠다. 지겹게도 동일한 것이 영원히 되돌아온다는 생각에 차라투스트라도 니힐리즘의 병에 걸렸었다.

"긴 황혼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지쳐있는,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비애가 발을 절룩거리며 다가와서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네가 피곤해하고 있는 사람, 저 왜소한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게 되어있다’ 나의 비애는 이렇듯 하품을 해가며 발을 질질 끌며 갔다.(중략) 사람에 대한 크나큰 싫증, 그것이 나의 목을 조여왔으며 내 목구멍으로 기어들어왔다. 거기에다 예언자가 예언했던 것, ‘모든 것은 한결같다. 아무 소용이 없다, 앎은 목을 조른다’는 말이." 『짜라』中,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살다가 나의 힘이 약해졌을 때, 내가 겁을 먹고,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나는 과거의 끔찍했던 일이 똑같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를 끔찍하게 괴롭혔던 사람과의 관계가 이제는 끝났다고 여겼는데, 다시 또 되살아나서 똑같이 과거의 괴로웠던 경험을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한다. 죄책감의 감정도 괴롭힌다. 악연은 이렇게 계속되고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면 모든 것이 흔들거리면서 현실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다. 죽어서만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가 나의 자아의 죽음이 그다지 두려워할 일이 아님을, 이번 영원회귀에 대해 공부하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영원한 존재, 즉 영원불멸을 욕망하는가, 아니면 영원한 생성(영원회귀)를 욕망하는가라는 표지판 앞에서 나는 조금씩 나의 자아의 죽음을 통한 보다 넓은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덜 느끼고 있다. 나라는 개체를 벗어난 생명의 바다로 합류하기 위해서 조금씩 나는 과거의 내 ‘관성’과 ‘자아’로부터 몰락하고자 한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덧없음과 반대로 너무도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에 영원성을 부여하려고 한다. 가장 귀중한 향유와 포도주는 바다로 부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이 나의 위안이다. 바다가 모든 것을 다시 돌려줄 테니까." 『권력에의 의지』, #1065

과거의 ‘나’와 결별하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 이번에 힘에의 의지를 발휘하여 이사를 했다.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들중에서도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이 좋은데 뭐하러 옮기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나 역시도 지금까지 살았던 생활스타일과 주변 환경 등에 대해 만족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에 변화를 주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삶은 여행이다’라는 말처럼,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더 이상 새로운 호기심을 느낄 것이 없을 때에는 그 곳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 필요하다. 이사를 하면서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불안하기도 하고 힘이 들기도 했지만, 낯선 환경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길들, 달라진 내 집의 공간을 통해서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음을 지금 감사하고 있다. 겁을 먹었던 과거의 나, 무기력하게 느꼈던 ‘나’를 이제 망각하려고 한다. 새로운 생성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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