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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의 배신_발제] 서론. 누더기가 된 이야기

oracle 2024.05.03 18:37 조회 수 : 49

 농경의 배신

Against the Grain: A Deep History of the Earliest States (제임스C.스콧 2017 출간)
농경의 배신 - 길들이기, 정착생활, 국가의 기원에 관한 대항서사 (2019 번역)

 

|서론| 누더기가 된 이야기: 내가 알지 못했던 것

# 이 책의 목적은 길들이기, 정착생활, 국가의 기원에 관한 표준서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어떻게 오늘날 국가라고 부르는 것의 원형에 의해 통치받으며 살게 되었을까? 이 새로운 생태적ㆍ사회적 복합체는 인류 역사시대 전부의 형판이 되었는데, 이 과정의 서사는 진보/문명과 공공질서/건강증진과 여가의 이야기로 정형화되었다. 이 책의 목적은 지난 20년 동안 이루어진 고고학ㆍ역사학의 연구성과들에 대한 나의 독해를 바탕으로 그러한 서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있다.

 

 

서론1. 국가와 문명 서사의 역설

(1) 국가-서사(국가는 자연적이거나 본래 주어진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어떻게 길들인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이 집중화된 공동체(국가) 안에 살게 되었을까?

국가는 절대 자연적이거나 본래 주어진 것이 아니다. ① 인류는 출현 이후 95% 시간동안 국가 없이, 수렵ㆍ채집생활을 하면서 이동이 자유롭고 흩어져있는 평등한 소규모 군집을 이루고 살았다. ② 식물재배ㆍ정착생활 후 4000년 지나서야 국가가 등장한다. 이 시간간격은 국가를 자연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 없게 한다. ‘국가는 자연적인 것’이라는 설명에 따르면, 국가형성을 위한 작물재배와 정착생활이 성립되면, 국가가 즉각 등장한다.

(2) 농경-서사(농경이 수렵ㆍ채집ㆍ유목보다 우월하고 매력적)에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등정의 서사   인류의 진보ㆍ문명의 서사를 성문화한 것은 최초의 농경왕국들이었다. 농경왕국들은 자신들의 기원이 되는 집단들(변방에서 유혹하고 위협하는 집단들)로부터 스스로를 구별짓기로 했다. 그 핵심에는 ‘인간등정ascent of man’(*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으로의 진화)의 서사가 있다.

 농경의 우월성 신화   농경(일정한 밭에서 작물재배)은 정착생활, 공식종교, 사회, 법에 의한 정부의 기원이 되었다. 농경은 야생적이고 야만적이며 원시적인, 무법하고 폭력적인 수렵채집민과 유목민의 세계를 대체했다. 농경의 우월성을 보증한 것은 ‘강력한 신이 선택받은 민족에게 신성한 곡식의 씨앗을 맡겼다’는 신화였다.

(3) 정착-서사(정착생활이 이동생활보다 우월하고 매력적)에 의문을 제기한다

 정착생활에 대한 서사   농경-서사(농경이 수렵채집ㆍ유목보다 우월하고 매력적)은 정착-서사(정착생활이 이동생활보다 우월하고 매력적)에 기초하고 있다. ‘지치고 피곤한 호모사피엔스는 수만년에 걸친 이동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영구적으로 정착하기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는 것.

 정착생활에 대한 저항증거   그러나 ‘이동생활을 하는 민족들(목축ㆍ수렵ㆍ채집을 하는 집단들)은 영구 정착생활에 저항했다. ① 그들은 정착생활을 질병 및 국가통제에 결부해 생각했다. 많은 아메리카원주민이 보호구역 안에 정착하게 된 것은 군사적 패배의 결과였다. ② 이동생활 민족들은 유럽과의 접촉에서 처음에는 이동성을 늘렸다. ex. 수족과 코만치, 나바호족 ③ 이동생활 민족들은 근대교역에 적응하면서도, 영구 정착생활에는 저항했다. 현대생활의 소여(*주어진 조건)인 정착생활을 인류역사의 보편적 열망으로 해석할 근거는 없다.

(4) 사회진화-서사(문명의 진보)에 의문을 제기

 문명진보의 서사   ①(사회진화의 서사) 홉스, 로크, 비코, 헨리 모건, 엥겔스, 스펜서, 슈펭글러, 사회적 다윈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수렵채집생활에서 유목생활을 거처 농경생활에(군집-촌락-소읍-도시에) 이르는 사회 진화에 관한 이야기들은 하나의 교의로 정착되었다. ②(진화론적 도식) 이 견해는 가족으로부터 씨족부족민족(종족)을 거쳐 국가(법률 아래 살아가는 민족)를 이룬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진화론적 도식을 흉내낸 것.

 문명진보의 서사 몰아내기   ①(문명진보의 서사) ‘농경기술을 한번 보고 나면, 누구도 유목민이나 채집민에 머물러있을 수 없으며, 각 단계는 인류의 안녕을 향한 획기적 도약(더 많은 여가, 더 나은 영양, 더 길어진 기대수명, 마침내 가정학과 문명발전을 촉진하는 안정된 생활로 나아간다)이다.’ ②(표준서사 몰아내기) 전세계 사람들의 몽상 속에서 이 서사를 몰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일을 여기서 시작해보려고 한다.

 

 

서론2. 국가에 제자리 찾아주기

표준서사에 의한 국가형성 탐구작업은 국가에 더큰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게 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인류의 공평한 역사를 통해서라면 국가에 훨씬 더 수수한 역할을 부여하게 되리라.

 국가가 고고학 기록을 지배   ①(국가는 인간조건의 상수?) 호모사피엔스-우리는 한세대 또는 몇세대라는 구성단위에 익숙해서, 국가를 인간조건의 불가피한 상수로 본다. ②(고고학에 기록될 가능성) 돌을 이용한 기념비적 건축물나무대나무갈대를 이용한 것 중에 고고학에 기록될 가능성은 어느 쪽이 큰가? 수렵ㆍ채집ㆍ유목민의 유물은 아무리 많아도 자연분해되는 쓰레기를 경관에 펼쳐놓았기 때문에, 고고학적 기록에서 사라졌을 것.

 초기국가의 규모와 역사   ①(최초국가의 면적ㆍ인구) 남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황허강 유역의 충적토지대와 풍적토지대에서 등장한 최초의 국가들은 인구면에서나 지리면에서나 매우 작았다. 국가면적은 고대세계지도에 묻은 얼국에 불과했고, 인구는 지구 전체인구(기원전 2000년에 대략 2500만으로 추산)에서 반올림오차로 처리할 수 있는 정도. 이들 국가는 비국가 민족(야민인)이 거주하는 광대한 경관에 둘러싸인 작은 옹이 같았다. ②(국가지배는 인류정치사의 최근) 국가의 헤게모니가 확고해진 시기를 기원후 1600년경으로 잡는다면, 국가가 군림한 기간은 인류정치사 1%에서도 최근의 2/10정도. 초기국가들이 등장한 예외적 지역들에 집중할 경우,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최근까지도 국가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놓치게 될 위험이 있다.

 세계인구의 대부분은 국가 바깥에   수메르, 아카트, 이집트, 미케네, 울메크/마야, 하라파, 진이 등장했지만, 세계인구의 대부분은 오랫동안 국가의 통제와 조세영역 바깥에서 살아갔다. 400년전까지도 지구의 1/3 여전히 수렵ㆍ채집하는 사람들, 이동경작하는 사람들, 목축하는 사람들, 독립적으로 채소를 기르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국가는 농경을 주로 했던 만큼 지구표면 가운데 경작에 적합한 작은 지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형태의 취약성   ①(권력의 암흑기가 일반적) 권력이 공고하고 통치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보다, 권력이 단절분열되는 암흑기가 훨씬 흔했다. 왕조창건이나 고전시기의 기록에 매혹되기 쉬운데, 분열과 난동의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고전기의 연극ㆍ철학에 관한 방대한 문헌자료에 비하면, 그리스에서 4세기에 걸쳐 문해력이 사라진 듯했던 ‘암흑기 백지상태이다. ②(국가형태의 취약성) 문화적 성과물을 검토하는 것이 역사학의 목적이지만, 이렇게 되면 국가라는 형태가 지닌 취약성과 나약함을 간과하게 된다. 최근까지도 동남아시아에서는 해마다 우기가 찾아오면 국가권력은 궁정담장 안으로 줄어들었다. 표준역사에서는 국가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국가는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가변적이었으며 매우 불안정했다.

 표준서사에 묻힌 비국가적 역사   ①(초기국가 기술의 축소) 기후변화, 인구통계학적 변화, 토양특질, 식단 등을 기록하는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국가에 대해 연대기적으로 기술된 내용을 찾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초기국가영역에서 변방으로 탈출하는 일은 매우 흔했지만, 이는 ‘국민을 문명화하는 시혜자로서 국가’라는 서사에 배치되기에 축소된다. ②(질병: 초기국가의 취약요인) 질병이 초기국가가 취약해진 주된 요인이라고 확신하지만, 질병이 끼친 영향은 기록되기 어렵다. ③(노예제) 마찬가지로 노예제, 속박, 강제된 재정착 역시 기록되기 어렵고, 족쇄 없는 상황에서 노예민과 자유민을 구분하기 어렵다. ④(비국가적 역사) 비국가는 널리 흩어져있었기 때문에, 비국가의 경로, 주변국과 관계, 정치구조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다. ⑤(표준서사에 저항한 역사세력을 탐색) 나는 가능한 겉만 번지르르한 국가의 자기재현으로부터 눈을 돌려, 왕조의 역사와 글로 기록된 역사에 의해 간과되었으며, 표준적인 고고학적 기술에 저항했던 역사적 세력들을 탐색했다.

 

 

서론3. 이 책의 개요

 

1장 길들이기: 불, 식물, 동물, 그리고 ··· 우리 (불ㆍ식물ㆍ동물 길들이기와 식량ㆍ인구의 집중화)

 (1) 1장 개요   ①(인간ㆍ식량 집중화) 인간이 국가형성의 대상이 되려면 필수적으로 한데 모여야 하는데, 인원(*인구집중화)이 많아야 하고 끼니(*식량집중화)를 거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②(길들이기 과정) 각각의 길들이기 과정은 자연세계를 다시 정리해, 광대한 환경을 한끼 식사의 반경으로 축소했다.

 (2) 길들이기 과정의 서사에 저항해야   ①(식물ㆍ동물 길들이기: 강압에 의한 과정) 식물ㆍ동물을 길들이는 것은 정착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지만, 식량인구의 집중화를 위한 조건들을 창출했다. / 나는 그 지역들을 후기신석기시대 다종생물 재정착캠프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국가형성을 위한 이상적 조건이었지만, 수렵채집보다 훨씬 고단한 노동에 건강에도 안좋았다. 주변의 위험, 배고픔 강압에 어쩔 수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수렵ㆍ채집ㆍ목축을 포기하고 농경에만 몰두하려 했겠는가? ②(길드는 대상과 길들이는 주체) ‘길들이다’는 말은 호모사피엔스의 능동적 행동으로 이해된다(‘인간이 쌀을 길들이고, 양을 길들였다.’ 같은 용법). 이때 길드는 대상의 능동적 작용은 간과된다. ex) 우리가 개를 길들였다고 할 때, 우리가 개를 길들인 것인지, 개가 우리를 길들인 것인지? ex) 인간과 ‘공생관계’에 있는 동물들(참새, 쥐, 바구미, 진드기, 빈대)은 재정착캠프에 박대당하면서도 인류와의 동거와 인류의 음식을 마음에 들어했다. / 길들이는 주체호모사피엔스 또한 길들지 않았던가? 곡물을 얻기 위해, 매년 밭을 갈고-씨를 뿌리고-김을 매고-곡물을 거두고-키질을 하고-밭을 가는 일에 매이고-매일매일 가축들을 돌보는 일에 매이지 않았나? 누가 누구의 종인가?

 

2장 경관조성: 도무스 복합체 (식물ㆍ인간ㆍ짐승을 길들인다는 의미) (*도무스: 농장과 농장에 인접한 주변)

 (1) 인류의 길들이기가 지구환경에 미친 영향이..   ① 길들이기는 호모사피엔스가 전체 환경을 자기가 좋아하는 형태로 조성하려는 현재진행형의 노력이다. 그러한 노력은 의도한 효과보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더 많이 가져왔다. ② 이 초기인류세의 영향ㆍ속도가 증가하면서 기원전 2000년경 세계인구가 대략 2500만까지 팽창한다. 인류가 불ㆍ식물ㆍ초식동물(방목동물)을 길들이면서 세계적으로 환경에 미친 영향을 역설해야 할 이유는 많다.

 (2) 길들이기는 작물ㆍ가축뿐 아니라, 인간도 변화시켰다   ①(작물ㆍ동물ㆍ인간의 변화) 농경정착지에 사는 식물ㆍ동물ㆍ인간의 집합체는 인공적인 환경을 창출했고, 이들에게 새로운 적응형태를 촉진했다. 새로운 작물들은 인간이 보살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되었다. 인간에 의해 길든 양과 염소 또한 더 작고 더 유순하고, 주변환경을 덜 의식하고, 성별이형성(*성별에 따른 형태차이)이 감소했다. 도무스에 의해, 국한된 환경에 의해, 과밀한 집단에 의해, 육체적 활동과 사회적 조직의 서로 다른 패턴에 의해, 인간 또한 얼마나 길들여졌겠는가? ②(농경생활의 빈곤함) 결국 주요곡물의 메트로놈에 묶여지내는 농경세계를 수렵ㆍ채집세계와 비교했을 때, 농경생활은 경험면에서 상대적으로 훨씬 더 좁고, 문화적ㆍ의례적 의미에서 더욱 빈곤하다.

 

3장 인구공통전염병: 완전한 역학폭풍 (초기국가에서 비재배계층이 져야 할 삶의 짐)

 (1) 고된 노동   첫째, 비지배계층은 힘들고 단조로운 고역을 담당해야 했는데, 농경은 수렵ㆍ채집보다 훨씬 힘들었다. 채집민이 어떤 강압에 의해 강제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발적으로 농경생활로 이행할 이유는 전혀없다.

 (2) 전염병   둘째, 농경 때문에 사람뿐 아니라 가축ㆍ작물도 한곳에 집중되어 전염병이 발생했다. 오늘날 질병들(홍역, 볼거리, 디프테리아를 비롯한 지역획득감염)은 초기국가에서 처음 등장했다. 많은 초기국가가 1천년기(기원후1~1000) 로마제국의 안토니우스역병유스티니아누스역병, 14C 유럽의 흑사병 같은 전염병으로 붕괴되었다.

 (3) 세금   셋째, 국가에서 걷어가는 세금(곡물ㆍ부역ㆍ징병 형태)도 사람들을 괴롭히는 또다른 역병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초기국가는 어떻게 국민이 되는 인구를 모으고 유지하고 늘리기까지 했을까? ‘오직 사막이나 산맥 같이 적대적 주변환경에 사방이 막혀있는 경우에만 국가형성이 가능했다’는 주장까지 있다.

 

4장 초기국가의 농생태 (곡물 가설)

 (1) 국가형성 조건: 곡물   ①(곡물이 국가를 만든다) 모든 고전국가는 서곡(黍穀. 수수옥수수 따위 잡곡)을 포함한 곡물에 기초했다. 역사기록에 카사바사고, 타로플랜틴, 브레드프루트(빵나무)고구마에 의존한 국가는 없다. 오직 곡물만이 집중화된 생산, 조제, 전유, 토지대장정리, 저장, 배급에 적합했다. 근대 이전의 세금징수원의 입장에서 작물의 가치를 평가하면, 주요곡물(관개농업으로 기른 쌀)을 가장 선호할 것이고, 뿌리덩이줄기(ex. 카사바)는 가장 덜 선호할 것이다. ②(국가형성이 가능한 작물환경) 길들인 곡물이 주식을 이루는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다른 먹을 것이 거의 없는 경우에만, 국가형성이 가능해진다. 수렵ㆍ채집ㆍ화전농사ㆍ해산물수집처럼, 생계가 몇가지 먹이그물에 걸쳐있을 때는 국가가 형성되기 어렵다.

 (2) 국가형성 조건: 인구   ①(인구가 국가경관을 조성한다) 비옥한 토사와 풍부한 수량으로 곡물경작지와 인구집중화를 위해 ‘전적응된preadaped’ 농생태환경은 국가형성 이전에 이룬 것들이다. 그러나 일단 국가가 형성되고 나면, 권력의 기초가 되는 농생태환경을 유지ㆍ증폭ㆍ확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국가경관조성이라 하는데, 이런 일들을 말한다. 토사 쌓인 수로정비, 새땅을 파서 수로건설, 전쟁포로들을 경작지에 정착시키기, 농사짓기ㆍ경작지개척을 않는 국민들 벌주기, 조세하기 어려운 생계활동(화전ㆍ식량채집) 금지. ②(초기국가의 형성조건) 초기국가는 세금을 매길 수 있는 곡물이 재배되는, 판독이 쉽고 측량된, 획일적인 경관(*곡물경작지)을 조성하려한다. 이 땅에서 부역ㆍ징병ㆍ곡물생산에 동원할 수 있는 대규모 인구(*인구집중화)를 유지하려한다.

 (3) 국가는 풍요로운 지역에서 발생?   ①(국가 정의)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성이란 제도적 연속체인데,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적 명제(*대립)이기보다, 더 많으냐 적으냐에 대한 판단(*차이)이다. ②(강력한 의미의 국가) 강력한 의미의 ‘국가’는 왕, 전문관료, 사회위계, 기념비적 중심, 도시성벽, 조세ㆍ분배체계가 갖추어진 정치체이다. 이런 국가들은 기원전 제4천년기(기원전4000~기원전3001)의 마지막 몇세기에 등장했다. 그리고 기원전 2100년경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강력한 우르 제3왕조의 영토적 정치체로 입중되었다. ③(국가는 풍요로운 지역에서 발생할 수 없다) ‘국가는 생태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에서 발생한다’는 서사가 있다. 하지만 국가형성에 요구되는 조건은 전유ㆍ측정할 수 있는 주요곡물과 곡물을 재배하는, 관리ㆍ동원이 쉬운 인구집단형태로 이루어진 부富다. 습지대 같이 크고 다채롭게 풍요로운 지역들은, 쉽게 파악되지 않고 변하기 쉬운 다양성을 지닌 채 이동하는 무리에 의해 선택가능한 수십가지 생계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국가형성지대가 될 수 없다.

 

5장 인구통제: 속박과 전쟁 (고대국가를 수립ㆍ유지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강압의 역할)

 (1) 국가형성의 서사: 강압 vs. 계약   고대국가의 수립ㆍ유지과정에서 강압의 역할은 뜨거운 논쟁주제이며 문명진보의 전통적 서사의 핵심이다. 초기국가형성이 강압적 기획에 의한 것이었다면, 홉스와 로크 같은 사회계약이론가들의 국가비전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사회계약이론은 ‘국가가 민간의 평화, 사회적 질서,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자석으로서, 그 카리스마를 통해 사람들을 이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 초기국가의 부자유 노동력  ①(부자유 노동력) 국가는 전쟁포로ㆍ계약노예ㆍ신전노예ㆍ노예시장ㆍ노동식민지 강제정착ㆍ죄수노동ㆍ공유노예 등 부자유 노동력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이 노동력은 도시성벽ㆍ도로ㆍ수로 공사, 광물ㆍ석재채취, 나무베기, 기념비세우기, 양모길쌈, 농사짓기에 특히 중요했다. ②(국가에 의한 관리) 국가는 인구(여성을 포함한 국민)를 가축 같은 재산으로 삼고 높은 번식력을 조장해 ‘알뜰히 관리’했다. 고대세계에서 노예는 쟁기질하는 짐승 같은 ‘일하는 도구’라는 아르스토텔레스의 판단이 공유되었다.

 (3) 초기국가의 동산 노예제   ①(동산 노예제) 고대세계의 공식적 노예제는 고전기 그리스와 초기 제정로마에서 절정에 이르는데, 이곳은 완전한 의미의 노예국가였다.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이탈리아에서는 인구의 상당부분이 억류된 사람들이었다. ②(고대국가의 존속조건) 오언 래티모어의 말. ‘중국의 만리장성은 야만인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었던 만큼, 중국인 납세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었다.’ 속박은 고대국가의 존속조건이었다. 노예제를 발명한 것은 초기국가들이 아니었지만, 노예제를 국가 차원의 기획으로 성문화조직화한 것은 초기국가들이었다.

 

6장 초기국가의 취약성: 붕괴와 해체 (초기국가의 취약성의 원인과 그것이 지닌 의미)

 *초기국가 취약성의 내재적 원인   가뭄ㆍ기후변화 같은 외재적 원인들이 더 중요할지 모르지만, 내재적 원인들이야말로 초기국가의 자기-한계적 측면을 보여준다. 국가형성 자체의 부산물인 세 단층선에 대해 고찰하려한다.

 (1) 질병: 과도한 정착, 이동, 국가   작물, 사람, 가축이 기생생물 및 병원체와 함께 전례없이 집중화된 결과로서 나타난 질병이다. 작물의 질병을 포함해 여러 전염병이 국가의 갑작스러운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2) 생태살해: 삼림파괴, 염류화   도시생활은 강변국가들의 상류에서 삼림파괴로 나타났으며, 토사의 퇴적과 강물의 범람이 이어졌다. 관계농업은 토양염류화와 생산성하락으로 나타났고, 경작가능한 토지의 폐기에 이르렀다.

 (3) 정치살해: 전쟁, 그리고 중심부의 착취   ①(붕괴의 두 의미) ‘붕괴’는 통상적으로, 위대한 초기왕국이 문화적 성취들과 함께 몰락하는 문명의 비극을 의미한다. 왕국은 더 작은 정착 공동체들의 연합이었으므로, ‘붕괴’는 단지 작은 공동체들이 다시 흩어졌음을, 어쩌면 이후에 재결합하게 되었음을 의미할 수 있다. ②(붕괴의 다양한 의미) 강우량과 작물생산량이 줄어든 경우, ‘붕괴’는 주기적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정례적 이산을 의미할 수 있다. 조세ㆍ부역ㆍ징병을 못견뎌 초기국가의 국민들이 탈주ㆍ반란을 일으킨 경우, ‘붕괴’는 억압적 사회질서의 파괴를 의미할 수 있다. 야만인들이 침입한 경우, 기존 통치자들의 문화와 언어를 차용하기도 한다.

 

7장 야만인들의 황금시대 (국가통제력에 종속되지 않은 방대한 인구로서 ‘야만인’)

 (1) 야만인의 존재론: 용어, 시대, 지대, 존재   초기국가들의 시대에, 국민에 비해 분산되어 있었고 수가 많았으며, 지표면의 거주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야만인들은 어떠했을까? ①(‘야만인’ 용어: 초기국가에 의해 재창조) 우리가 아는 ‘야만인babarian’이란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바바ba-ba’는 그리스어가 아닌 언어를 보롱하듯 흉내낸 소리) 그 안에는 생포된 노예들도 있었지만, 문명화된이웃 사람들(이집트인ㆍ페르시아인ㆍ페니키아인)도 있었다. 이처럼 야만인이라는 용어는, 국가 외부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지으려는 초기국가에 의해 재창조되었다. ②(초기국가들의 시대 = 야만인들의 황금시대) 야만인들은 국가의 통제력에 종속되지 않은 방대한 인구였다. 나는 ‘야만인’이라는 말을 확고하게 빈정대는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데, 취약한 초기국가들의 시대란 오히려 야만인으로 살기 좋았던 시기임을 주장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초기국가들의 시대는 야만인들의 황금시대라 할 수 있다. ③(야만인 지대) 야만인 지대는 국가의 농생태를 반사하는 거울상이다. 그곳은 수렵ㆍ화전경작ㆍ조개류수집ㆍ채집ㆍ목축ㆍ덩이줄기-뿌리채취를 주로하며, 곡물은 있더라도 거의 재배하지 않는 지역이다. 또한 물리적 이동성을 갖는 지역이며, 달라질 수 있는 여러 생계전략이 뒤섞여있는 지역이다. 한마디로 ‘파악불가능한’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다.(*국가형성이 불가능한 지역) 야만인의 영역이 다양성과 복합성의 영역이라면, 국가의 영역은 농경제적으로 말해 단순성의 영역이다. ④(야만인의 존재) 야만인이란 본질적으로 문화적 범주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인구집단을 가리키는 정치적 범주다. 야만인들이 시작되는 변방의 경계선은, 국가의 조세곡물이 끝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야만인과 구분하고자 ‘익힌 것熟’과 ‘날 것生’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익힌’ 혹은 ‘진화된’ 분파는 호적을 갖고 있었으며, 중국인관리들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로서, ‘지도 안으로 들어왔다.’ (요에 귀화해서 요의 호적에 편입된 여진족을 여진, 요에 귀화하지 않은 여진족을 여진이라고 불렀다.)

 (2) 야만인들의 침략과 초기국가의 취약성   정착 공동체인 초기국가는 이동이 더 자유로운 비국가 민족(종족)의 침략에 취약했다. ①(야민인들의 침략) 수렵ㆍ채집을 하던 이들(*야만인들)은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찾는 전문가였으므로, 사람들이 곡물ㆍ가축ㆍ직물ㆍ금속성도구를 가지고 정착 공동체를 이루어 한곳에 정주하며 모여있는 곳(*초기국가)은 손쉬운 채집대상이 되었다. 곡물저장고에 가서 쉽게 작물을 몰수해올 수 있다면, 국가처럼(!) 힘들여 작물을 재배할 이유가 없다. 베르베르족의 속담, “습격이야말로 우리의 농사다.” 그래서 초기국가의 농경정착지가 늘어난 것은, 비국가 민족(종족)의 채집지역이 늘어난 것이다. 한번에 여러 가지를 구입할 수 있는 쇼핑센터인 셈! ②(초기국가의 대책) 초기국가는 습격에 대비하거나, 약탈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잠재적 습격자들에게 뇌물(공물)을 바쳤다. 초기국가의 재정적 부담과 취약성은 현저하게 증가했다.

 (3) 초기국가와 야만인들의 교역관계 혹은 공생관계   ①(습격보다 교역) 초기국가와 야만인들의 관계는 구경거리가 많은 습격이 주된 화제가 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습격보다 교역이 훨씬 더 중요했다. 풍요로운 충적토 저지대에 위치한 초기국가들은 자연스럽게 주변 야만인들의 교역상대가 되었다. ②(초기국가는 교역창고, 교역시장) 야만인들은 다양한 환경에 널리 퍼져 살았던 만큼, 금속광석ㆍ통나무ㆍ피혁ㆍ흑요석ㆍ꿀ㆍ약초ㆍ향료 등 초기국가의 존속에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해줄 수 있었다. 야만인들에게 저지대왕국(*초기국가)은 약탈대상보다는 교역창고로서 더 가치가 있었다. 초기국가는 곡물ㆍ직물ㆍ대추야자ㆍ말린생선 같은 저지대 생산물과 교역할 수 있는 내륙지방 생산물의 크고 새로우며 수익성 높은 시장이 되었다. ③(공생의 결과, 문화적 혼종성) 이 같은 공생관계의 결과, 전형적인 ‘문명-야만’의 이분법에서 혀용되는 것보다 훨씬 큰 문화적 혼종성이 나타났다. 그래서 초기국가(초기제국)는 흥망의 운명을 같이한 ‘쌍둥이 야만’이라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다. 

 (4) 야만인들의 황금시대 종언   ①(야만인들의 황금시대) 상대적으로 약한 농경국가와 다수의 비국가 기마민족들이 함께 공존하던 길고 긴 시기가 야만인들의 황금시대였다. 야만인들은 초기국가들과 교역을 하며 수익을 올렸고, 필요할 때는 공물을 받으면서 습격과 약탈을 병행했다. 그러면서 조세와 농경노동이라는 불편을 피했고, 다양하고 영양이 풍부한 식단과 물리적 이동성을 향유했다. ②(야만인들의 황금시대 종언) 교역에서 초기국가들로 들어간 주요상품은 노예였을 것이고, 노예는 대개 야만인들 가운데 나왔을 것이다. 고대국가들은 전쟁에서 노예를 생포하거나, 교역에 전문화된 야만인들에게서 노예를 대규모로 사들임으로써 인구를 보충했다(*동료 야만인 공급). 야만인 용병들을 방위체계에 고용하지 않은 초기국가는 거의 없었다(*전쟁기술 제공). 초기국가에 동료 야만인들을 팔고 전쟁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야만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황금시대를 저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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