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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세이_니체] 사고는 이렇게 사건이 된다

흥미진진 2024.04.19 23:49 조회 수 : 29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사고를 쳤다. 삶이 180도 바뀌는 아주 큰 대형 사고였다. 바로 혼전임신!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인 남녀 커플 한 쌍은 멘붕이었다. 사랑의 대가로 생명을 얻었는데 그것도 쌍둥이였기 때문이다. 숙맥 구분 못 하는 남녀가 만나 연애를 시작하니 사람 여럿 놀라 자빠지게 할 일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신기한 점은 양가 부모님들께 알려드리기 전,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께서 각각 태몽을 꿨다는 것이다. 시어머니께서는 둘째 형님에게 혹시 임신한 거 아니냐며 전화까지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꿈의 주인공은 부정하고 싶었지만 우리였다. 양가 부모님들은 사이좋게 태몽을 하나씩 나누어 꿔주셨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소리를 들으며 대학교 졸업식과 동시에 결혼식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는데 준비 없이 시작한 육아와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순리대로 흐름 따라 취직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는 것도 힘들다고 아우성치는데 남편과 나는 흐름을 역행하여 아이 먼저 만들고 결혼하고 취직하는 거꾸로 사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또래들보다 몇 배는 고생스럽게 살아야 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우리 부부는 미래에 해도 될 고생을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조강지처와 조강지부가 되어 일찍 부모가 되었다.

올바른 선택이란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을 올바르게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육아, 결혼, 취업이라는 인생 과업을 한꺼번에 맞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한 방에 숙제를 모두 해결한 것이기도 했다. 찔끔찔끔 힘든 것보다는 한 번 고생으로 끝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이제는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행복과 여유가 스며들고 있다.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친정엄마는 나이 쉰에 할머니 소리를 듣게 했다. 그때는 젊은 나이에 할머니 소리 듣게 해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손자들 데리고 밖에 나가면 할머니와 손자가 아닌 엄마와 아들 관계로 사람들이 봐주어 기분 좋아하신다. 시댁 식구들도 그때 일로 아들이 장가를 가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노총각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라며 빨리 데려가 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이란 요지경이다. 끝까지 살아봐야 이 사건이 화인지 복인지 알 수 있다. 내 선택이 올바른 길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다. 내가 포기하는 순간 내 선택은 오답이 되었기에.

 

아이들도 엄마 아빠가 젊어서 좋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엄마 아빠 나이로 덧셈을 했는데 반에서 가장 숫자가 적어서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젊다고 자랑했다니 내심 부끄러웠다. 엄마 아빠가 젊어서 좋은 이유를 물어보니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이 길어서 좋다고 말해 가슴이 찡했던 적도 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반에서 우리보다 더 젊은 엄마 아빠는 없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니 웃기는 일이다. 다른 아이들은 게임하면 아빠에게 혼나는데 우리 집은 아빠가 아이들과 같은 게임을 하고 있으니 친구들도 신기하게 여긴단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낳아 키워 다른 부모들만큼 넉넉하게 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했는데 일찍 결혼한 사건이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이유가 된다니 인생역전한 기분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아이들 덕분에 내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나'였을면 해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엄마'였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고 6전 7기 만에 내가 원하던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변 친구들도 처음에는 내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이제는 어디를 가든 나를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취업, 결혼, 출산, 육아를 가장 빨리 해치워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흐름에 역행하는 삶이 잘못 든 길인 줄 알았는데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다 보니 오히려 더 빠른 지름길로 가고 있었다. 과거에 일어난 사고 하나가 지금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서운했을 멋진 사건으로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다. 이것이 시간도 의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지만 이제는 없었으면 어쩔 뻔한 순간이 되었다.

 

능동적인 힘과 의지로 결혼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어난 사건에 끌려다니는 반동적인 힘에 매몰되어 살지는 않았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고 더 단단한 사람이 되게 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되돌아 간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는 선택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더 희망적인 것은 내 안에서 할 수 있는 극복은 모두 끝났다는 것이다.

 

"낮 동안 너는 열 번 너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 그것은 적당한 피로를 가져온다. 영혼에게는 그것이 양귀비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이겨낸 낮이 지나가고 이제는 적당한 피로감과 영혼이 행복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과 하고 싶은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현재가 온전히 나를 위해 존재한다. 나는 또 무엇을 도전하고 해낼 수 있을까? 내 인생이 기대와 설렘으로 충만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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