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자료 :: 세미나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슬라보예 지젝,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2. 방탕한 동일성

2012. 10. 26 임당

Ⅰ. 불가능성

헤겔의 “일원론”

헤겔에 대한 통념은, 헤겔이 특수성을 열어두며 차이는 내재적 내용이 자기-분절되며 파생된 어떤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현상적 외부는 내적 개념의 자기-매개로 환원되고, 모든 차이들은 개념의 매개된 자기 동일성의 이상적 계기들로 설정된다는 측면에서 미리 “지양”된다. 헤겔 비판자들은 자신들의 위치 설정을 위해 도달할 수 없는 실재격인 “절대지”를 설정하는 수고를 한다. 반면 헤겔 옹호론자들은 헤겔이 차이를 말살하지 않았다고 감싸며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이라는 공식 속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그 둘(헤겔 비판자와 옹호론자)이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은, 헤겔은 극단적으로 “일원론”을 확신함으로써 오히려 일원론을 전복시켰다는 점이다. 변증법에 대한 상식적인 생각은, 변증법적 지양-통합에 저항하는 동시에 그 가능성이기도 한 잉여가 존재하는데, 이 잉여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잘못된 점은, 변증법의 “차이의 지양”은 그 핵심이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들이 언제나 이미 지양되었는가 하는 경험, 달리 말해 어떤 의미에서 차이들은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었는가 하는 소급적 “철회”에 있다. 여기에 데리다의 헤겔 독법의 첫 번째 오해가 있다. 데리다는 상호 배타적 주장들이 반복되는 역설을 주장하지만, 헤겔은 역설적인 두 명제 모두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인다.

 

“정신의 소리 없는 짜임”

변증법적 “소급 철회”의 특질은 종결행위에서 “내용”의 변화과정을 분리시키는 간극이 필연적이라는데 있다.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우리가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이후의 말들은 모두 형식적인 행위일 뿐인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미신에 대한 계몽주의투쟁을 다룬 부분이다. 헤겔은 병균은 이미 확산되고 난 뒤에만 포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싸움은 언제나 때늦은 것이고, 병은 이미 정신의 힘과 생명의 정수까지 침범한 상태이므로 어떤 수단이나 약물도 상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순수통찰은 이러한 병처럼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신체 내이를 두루 거치며 조금씩 정복해 나가고 마침내 어떤 정념(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지?)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변증법적 과정은 상징 네트워크의 조용한 짜임, 즉 “정신의 소리 없는 짜임”이 먼저 일어나고, 그것이 이미 완결된 순간 “즉자적으로”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그 순간, 정신 이전 형태가 “대자적으로”붕괴되는 시간이 도래한다. 의식은 필연적으로 너무 늦게 온다. 따라서 전복의 기술은 가능한 한 조용히, 그리고 충분히 기다리면서 모든 것이 완전히 짜여 질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 된다. 그리고 작업이 끝났을 때, 그저 형식적인 알림이 있으면 충분하다. 이는 라캉이 말했던 “두-죽음-사이”라는 개념 한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죽어버린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깨닫는 순간의 두 번째 죽음 말이다. 때문에 정신분석가의 감각은 “소리 없는 짜임”의 작업이 이미 끝난 시점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증명된다.

 

“무에서 무를 통해 무를 향해”

지젝은 헤겔이 변증법적 과정에서 차이들을 근거 없는 허구라고 하는 극단적인 “일원론자”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물은 언제나 이미 그래왔던 것이며, 자신의 존재를 지양하는 변증법적 과정에서 자신의 진실에 도달하는데, 이는 곧 존재의 상실을 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앞에서 말한 “절대지”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헤겔의 이성과 현실성의 동일에 관한 공식은, 이성적인 것도 현실적인 것도 “즉자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절대지”라고 하는 것은 도달 불가능성을 함축하며, 이 점 때문에 모든 대상이 실정적으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불일치는 존재론적 일관성의 긍정적 조건이 된다. 개념 자체가 변증법적 운동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운동 속에서 대상은 개념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이 근접성은 개념 자체를 변화, 전치시킨다.

 

(불)가능성의 조건

그러므로 헤겔의 논의는 모든 부분적 계기들이 각기 절단되어 절대로 자기 자신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장애가 변증법적 발전을 “작동시킨다.” 그러므로 헤겔의 “일자”는 어떠한 동일성도 획득할 수 없는 근본적 부정성의 역설이다. 때문에 우리는 대상을 난도질 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 대상이 자유롭게 자신의 진실에 도달하게끔 내버려두어 스스로 무너지게끔 하면 되는 것이다. 헤겔은 텍스트에서 가장 개방적인 공적 활동이 가장 위대한 간계임을 이야기한다. 라캉이 정신분석가의 위치와 헤겔적 현자의 위치를 등치시킨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정신분석가가 분석자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그저 분석자가 스스로 이야기하게끔 내버려 둠으로써 진실에 도달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말한 “아름다운 영혼”은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자로 만듦으로써 존재론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만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패배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역설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맞은 주체가 그 책임을 회피할 권리가 없다는 것으로도 이야기될 수 있다. 그것이 실현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 진실한 의미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라캉의 ‘“도둑맞은편지”에 관한 세미나’에서 편지가 항상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처럼, 진실은 언제나 공적인 장에 기입되는 방식에서 발현되며, 이를 회피하려고 한들 그것은 더욱 더 고집스럽게 “소리 없는 짜임”을 수행한다.

Ⅱ. 반영

재-표지의 논리

지금까지의 교훈은 그래서 헤겔의 변증법적 접근의 핵심은 부정성 자체의 긍정적 차원을 드러내는 것, 또는 처음에 부정적 작인이었던 것이 어떻게 긍정적인 조건으로 작용하게 되는지를 포착하는 데 있다는 것이 된다. 때문에 헤겔을 오로지 ‘부정성의 사상가’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이 모든 이질성들은 개념의 자기 매개를 통해 “지양” 내지 포섭되고, 그 목적론적 운동의 폐쇄 회로를 통해 모든 다양성들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자신의 이상적 계기 속에 자리 잡는 것이라 볼 때, 데리다는 이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불일치의 전형적인 예로 가쉐의 『거울 은박』을 들 수 있다. 가쉐는 헤겔의 명제를 데리다적인 것으로 끌어온다. 그리고 헤겔과 데리다의 거리 유지를 위해 헤겔 자신을 통해 헤겔을 반박하기에 이른다. 그는 변증법적 통찰을 변증법으로부터 벗어난 재전유의 조건으로 본다. 헤겔에 대한 “해체론적” 독법 속에서 “지양”에 대해 다루면서, 지양에 저항하는 잔여물을 강조하다 다음 단계에서는 지양과 잔여의 대립을 지워버린다.

라캉의 기표논리와 데리다가 가까워지는 순간은 재표지되는 표지에 관한 것에서 드러난다. 흔적으로서의 표지가 변별성의 다발로써 나타날 때, 이러한 변별성이 자기-지시를 초래한다. 이 표지들의 연쇄는 그 변별성의 사이를 공백으로 드러낸다. 차이의 공간을 재표지화 하는 “텅 빈” 하나의 표지가 있는 것이다. 이는 자크알랭밀레의 논문에서 언급한 변별적 기표 질서에서 기표와 그 부재 사이의 차이가 기표 속에 기입되어야 한다는 것의 의미와 같게 된다. 이는 라캉의 “빗금친 주체”의 역할이 아니던가. 즉, 재표지는 다른 모든 표지들을 대신해서 텅 빈 기입장소를 표상한다. 이러한 재표지의 논리는 “형상”과 “배경” 사이의 거리를 수립함으로써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직접적으로 사물 자체는 변하지 않고, 다만 재표지에 의해서 상징적 네트워크 안에 기입되는 양태만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표지는 재표지에 의해 스스로 작용하면서, 자기 안에 스스로를 기입한다. 가쉐는 이 점을 놓친다. “반영이 언제나 의미되어 왔던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 점에서 말이다.

 

재표지된 심연

데리다의 재표지 논리에서 텍스트성이 텍스트 내부에서 스스로를 반영하게 하는 요소는 결코 연쇄를 지배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요소들에 의해 계속 새롭게 재표지될 따름이다. 때문에 오직 이중 거울 반사 속에서만 텍스트성을 반영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재표지의 과잉이 항상 발생한다. 이러한 표지 연쇄의 총체화는 차이 자체를 재현하는 부가적 표지에 의해 재표지된다. 결코 전부를 총체화 할 수 없는 하나를 남기는 것이다. 헤겔의 반영적 재전유는 바로 그런 불가능한 총체화이다. 이는 헤겔이 형식적으로 기능하는 군주를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군주는 가장 순수한 주인기표로써, 즉 헤겔의 일원론의 일자로서 기능하는 단 하나의 예외이다. 그리고 대중은 그와의 거리를 통해 구체적인 관습적 총체로 변형된다. 때문에 왕은 그가 행하는 행위나 그의 능력에 따라 판단될 필요 없다. 이는 결국 왕 이라는 기표와 대상 사이의 분리를 수행하며, 군주의 신체는 기표의 잔여물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실패한 반영에서 반영된 실패로

따라서 헤겔적 군주는 역설적 지점이 된다. 여기서 데리다의 재표지로 기능하는 요소가 발견된다. 군주가 국가조직 내부에서는 낯선 신체로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 총체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으로써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헤겔은 데리다적 “해체”를 통해 발견된 한계를 가장 핵심적인 지점으로 설정한다. 데리다가 지양을 텍스트성의 텍스트 속으로의 성공적인 기입이라고 의미하는 것, 때문에 헤겔적 반영에서 계속적인 실패를 한계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젝은 헤겔이 그 실패 자체가 반영의 근본 특질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패 자체로 인해 열림으로써 기입공간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헤겔의 “절대적 반영”은 반영과 반영을 벗어나 배가된 반영, 이 두 과잉의 “반영적” 관계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재표지의 역설은, 동일성이 공백으로 작용하는 하나가 대립물을 대리한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거울의 배면

가쉐는 ‘거울의 배면’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되돌려 받는 대신 암점과 대면하게 된 관찰자를 말한다. 이 암점들은 대상과 거울 이미지 사이의 거리를 창출하며, 이는 반영의 불가능성을 의미하게 된다. 헤겔은 여기서 암점이 주체의 구성요소라고 말한다. 주체는 불완전한 한에서, 얼룩의 상관물인 한에서 존재한다. 라캉이 왜상을 참조하는 것 또한 이러한 의미이다. 주체의 고유한 차원이 “반영” 되는 것은 반영적 포획을 빠져나가는 잔여물 안에서 가능하며, 때문에 주체는 거울의 배면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4 [생물학세미나] <혼돈의 가장자리> 4,5,6장 후기 & 11월 10일 공지 [3] 단감 2012.11.04 2090
503 [생물학 세미나] <혼돈의 가장자리> 4,5,6장 발제문 입니당 file 단감 2012.11.04 3646
502 [푸코 세미나] 주체의 해석학 세미나 10월 29일 후기 및 11월 5일 공지입니다^^ [2] file 미선 2012.11.03 1968
501 [비포를 읽자]5회차 후기와 6회차 공지 [4] 원진 2012.11.02 1796
500 [흄세미나] 11/1 후기 및 다음 세미나 공지 [2] file 꽁꽁이 2012.11.02 2513
499 [클래식을 듣자] 10월 27일 후기와 11월 3일, 간단한 공지! 용우 2012.11.01 2453
498 [흄세미나]10/25 후기와 공지 file nomadia 2012.11.01 2133
497 [생물학 세미나] 생명: 생물의 과학 3, 4장 발제문 file 생물학 세미나 2012.11.01 4180
496 [생물학 세미나] 다윈의 식탁 발제문 file 생물학 세미나 2012.11.01 4385
495 [생각의 구조들]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10월 마지막주 후기 입니다 [3] file 밥강아지 2012.10.30 2443
494 [생물학세미나] <혼돈의 가장자리> 1장~3장 후기 & 11월 3일 공지! [5] file 의횬 2012.10.29 2184
493 [하이데거강독] 10월 27일 세미나 후기 김민우 2012.10.29 2057
492 [푸코 세미나] 10/22세미나 후기와 다음주 공지 [1] file 승곤 2012.10.27 2151
» [횡단정신분석]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2. 방탕한 동일성 [1] file 수유너머N 2012.10.26 3891
490 [비포를 읽자]4회차 후기와 5회차 공지 [7] file 미라 2012.10.26 2466
489 횡단정신분석 세미나 발제문 1장 하나에 대해 hwa 2012.10.23 3730
488 [비포를 읽자] 3회차 세미나 및 후기, 그리고 4회차 공지입니다. [3] 장희국 2012.10.23 1904
487 [하이데거강독] 10월 20일 세미나 후기 김민우 2012.10.21 1874
486 [생물학세미나] 3회차 후기, 4회차 공지 박근배 2012.10.19 2139
485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두 번째 시간 후기 [2] 몽상가 2012.10.19 2308
CLOSE